심정 시집문고

엄마 당신은 아셨소/이존형

청산 /임흥윤 2023. 4. 4. 17:12



엄마 당신은 아셨소
                            이존형

엄마랑  이야기하는
시간이 좀 길어요.
엄마 당신은 진정 바보였소

당신의 역사를 쓰려면
몇백 권의 원고지가
필요할 듯

세상 어느 누가
당신의 애달픈 삶을
알리라.

당신은
십여 세의 어린 나이로
고향 성주 땅을 벗어나서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밀양 땅까지 흘러와서는

우여곡절 끝에
불구의 남편을 만났구려
불구의 남편이
당신께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었겠소

당신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에야

여주 이 씨 가문의
호적에 올라갈 수 있었고
아들 역시
그때에 호적에 올라갔었지요.

아들에 소풍 때나
운동회 땐
밀양읍내 전체가
덜 썩이는 큰 행사였지만

당신은 늘 시어머님의
뒤에서 나를 바라보셨지요.

당신은 진정 바보였단
말인가요?

동네 사람들의
기호 엄마는 좀 모자란다며
수군거리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들었다오.
아직도 귓가에 생생히 들린다오.

아버지와
당신은 한 살 차이
나와는 낭랑 십팔 세 차이

그리도 어린 나이에
그 모질고도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디어 내셨어요?

남들은 모자란다 하였어도
나에겐 그저 착한 엄마!

할머니 돌아가시고
당신 홀로 고향 집에 남겨둔 채

어린 손녀 셋을 데리고
수원 땅을 밟았을 땐 억장이
무너 저 내렸다오.

수원에서 자리 잡고
당신을 모셨을 땐
참 행복했었다오.

아들이 행복하게 여기는 밑자리엔
당신의 착하고 착한
며느리에 숨은 그림자의
희생은 반비례로 너무나 컸다는 것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까다로우신
당신의 입 맛에 따라
매번 다른 반찬을 만들며
당신께서 좋아하는
통닭이나  쇠고기들은
당신의 어린 손자들을 방에 가두어놓고
당신만 드렸다는 것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그리도 착한 며느리 덕분에
여기저기 온갖 곳을
함께 다니면서 당신은
호사를 누렸다는 것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쩌다 중풍이라는 모진 놈을 만나
십 년이란 세월 동안  
자리보전할 때

며느리가 대소변을 받아내고
직장엘 가고 나면
당신  혼자 집을 지킬 땐
아니 누워계실 땐
어린 당신의 손자 손녀들이
학교에서 먼저 오는 순서대로
당신의 대소변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뒷일을 처리한
당신의 착한 손자 손녀들이
고맙진 않으셨어요?

그런데 말이요.
제가 말이요
정말 잠깐 마쳤었나 봐요.

당신께 정말 해서는
안될 말을
기어코 하고야 말았지요.

무엇이 아쉬워서
어서 못 가시느냐고
이미 뱉어버린 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
기억에 없는
어느 해 어느 날에

아내가 직장엘 가면서
오늘은 당신이 엄마를
잘 보살피며
일 나가지 말라고 했었소.

그날 낮에
기어코 당신은 편한 세상으로
소풍을 떠나셨다오.

엄마 저를 용서하지 마요.
못난 아들놈이  죽을죄를 지었는데
무슨 낯짝으로
당신께 용서를 받겠어요.


그리고 엄마 어릴 때 언젠가
예쁜 아줌마가 날 찾아와선
네가 존형이냐고 하시면서
손을 꼭 잡고 한참이나
바라보다간 말없이 가버렸지요.

존형이란 나의 이름은
학교에서나 불리고

나의 호적 이름을 아는 이가
많지  않았는데
금시 초면인 아줌마가
어떻게  존형 이를 알았을까요?

그땐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다가
생각을 놓친 게 하나 있었지요.

수년을 지나서
그 이야기를 가족들 앞에서
했을 때
모두가 일언반구에 말도 없이
무시하고 말았지요.

만약에 그 시절에
유전자검사를 알았더라면
검사라도 해보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도  당신께서
먼 길 소풍을 떠난 뒤에서나
생각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이젠 당신의 성씨도 바꾸고
고향도 잃어버린 채
장애인의 아내로 살아오신
당신은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혀버린
뺄 수조차 없는 영원한
나의 엄마인 것을

그리고 엄마
거기서도 아낙네들이
기호 엄마는 좀 모자란다고
수군거리면
이젠 참지 말고 덤벼요.

머리채라도 잡고 늘어지면서
저를 불러요.

엄마목소릴 듣는 즉시 달려가서
모두를 혼줄 나게 할 테니까요.

엄마 솔직히 당신은 잘 생긴
얼굴이 아니잖소.

그래도
내 눈에는 세상 어떤 엄마보다
제일 잘생긴 영원한
나의 엄마인 것을
내 죽어서도 잊지 않을게요.

엄마 손가락 걸고 약속해 줘요.
절대로 나를 용서하지 말고
대신에
착하디 착한  손자손녀들
그리고 증손자 손녀들이

세상에서 뒤 처지 않고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앞길이나 잘 닦아주시고

당신의 착한 며느리
건강하게 오래도록 행복하게
소풍을 즐기도록
잘 지켜주시길 바라는데

엄마랑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엄마한테 지은 죄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더는 이야길 할 수가 없네요.

엄마,  아빠랑
편안한 밤
좋은 꿈만 많이 꾸시길 빌어요.

엄마 안녕!

2023년 4월 4일
깊은 밤 0시 50분

엄마생각에
잠 못 이루는 야밤에
엄마랑 이야기를
못다 한 것이 아쉬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