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훈독

文鮮明先生말씀選集 616 권
14. 마지막 때
2009.10.10 (토) 미국 뉴욕주 이스트가든
이제는 섭리의 때도 마지막입니다. 다 끝났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줘야 될 것은 다 가르쳐줬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짓고 끝을 내야 할 시대가 다가옵니다.
참평화세계와 참부모유엔세계 안착의 의의
디데이(D-day)가 얼마나 남았느냐 하면 3년 3개월이 남았습니다. 삼 삼은 구(3×3=9)입니다. 요전에도 얘기했지만 여러분이 이 책을 가지고 선생님이 설명하는 내용과 같이 설명할 줄 모르면 읽었다는 위신도, 봤다는 위신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이것이 이뤄진 사실 위에 여러분이 서 있어야 됩니다.
이 책이 필요한 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이 없었다면 다 필요 없습니다. 타락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이 생긴 것입니다. ‘참평화세계와 참부모유엔세계의 안착대회’의 이것은 타락하기 전의 얘기입니다. 타락해서 복귀되어 갈 수 있는 이 시대,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시대인 지금은 참평화세계라는 것이 없습니다. 참부모유엔세계의 안착도 없습니다. 사탄이 절대적 위치에서 주관하고 있는 사탄만의 세계입니다.
최후의 결론이 되는 말은 뭐냐 하면 ‘평화의 주인, 혈통의 주인’입니다. ‘평화의 주인, 혈통의 주인’은 이 책의 밑으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한 권 가운데 다 있어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것은 타락 전입니다.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에덴동산의 타락하기 이전의 문전까지 와서 ‘참부모유엔세계’입니다. ‘참부모유엔평화세계’에서 ‘평화’를 뺐어요, 여기에 있으니까.
평화세계의 안착대회! 대회는 뭐냐 하면 안착하는 대회입니다. 타락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이 안착해 가지고 평정된 세계에 있어서 영원히 옮기지 않고 정착하는 시대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정으로 하나님의 집 가운데서 우리가 같이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구원섭리란 말, 이 책에 있는 내용의 사실이 필요 없고 맨 끝에 있어서 ‘평화의 주인, 혈통의 주인’이라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의 기착점, 맨 마지막의 종착점인 문전 앞에 왔다는 얘기입니다. 참부모는 뭘 해야 되느냐 하면 참부모유엔세계를 안착시켜야 됩니다. 참부모유엔세계의 안착을 거쳐야만 참평화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출발하면서 문을 나올 때 어떻게 했느냐 하면 양의 피를 뿌린 핏자국을 밟고 넘어 나왔습니다. 지금의 이때에 들어가려면 그 피를 뿌린 것을 씻어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끝날을 몇 번이나 가졌느냐? 에덴동산에서 타락으로 말미암아 창조이상이 끝나던 그때에 처음의 끝날이 왔습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는 아버지와 아들딸, 부자지관계였는데 부자관계는 상하의 관계입니다. 부부는 일체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그건 유교사상에서 온 것입니다. 상하, 그 다음에 뭐가 돼요? 타락이 없었더라면 상하⋅우좌가 돼야 합니다. 상하⋅우좌⋅전후! 하나님을 중심삼고 종적으로 일체, 한 몸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상하⋅우좌가 돼야 할 것이었는데, 이것은 거꾸로 됐습니다. 우좌가 좌우로 됐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딸, 그 다음에 부부관계입니다. 좌우관계는 부부관계인 것입니다. 우좌로 돼야 할 것이었는데 거꾸로 됐다는 겁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글을 쓰더라도 서양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씁니다. 오른쪽에서부터 이렇게 써서 왼쪽으로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거꾸로 됐어요. 좌우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왜 좌우가 됐느냐? 사람의 양심은 직고합니다. 바로 말해요. 직접 고합니다. 아버지면 아버지한테 다리를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교량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하관계도 완성됐으면 한 몸입니다. 좌우관계는 두 번째입니다. 하나 둘, 그 다음에 전후관계가 세 번째입니다.
동양사상을 보게 되면, 이 우주의 공(空) 가운데 무엇이 먼저 생겼느냐 하면 시(時)가 생겼습니다. 때입니다. 시공(時空)! 우주가 어떻게 돼 있느냐? 시공, 시간을 중심삼고 마디로 돼 있다고 해서 시절(時節)입니다. ‘그 시절, 전 시절’ 하면서 시절을 말합니다. 그 때도 마디가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이라고 할 때에도 ‘절(節)’ 자가 들어갑니다. 늙은 시절에도 마디가 있습니다. 시공, 공간 가운데 시간을 집어넣고 마디까지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자체가 바로 하나 둘 셋입니다. 하나 둘인데, 공이 들어갔으니 시공입니다. 또 시절이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 중년 시절, 늙은 시절, 죽을 시절이라고 하면서 마디가 들어갑니다.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