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 시집문고
백구두/이존형
청산 /임흥윤
2023. 4. 28. 08:45

백구두
이존형
여태 살아오면서
백구두는 딱 한 번 신어보았다.
백구두 그거 엄청나게
신경 쓰였지!
발자국 옮길 때마다
뾰족한 코가
벗겨질까 봐 조심스러운 게
구두가 발을
보호하는 게 아니고
온몸이 구두를
보호하는 셈이었다.
양화점에서
맞출 때의 기분과는
판이하였다.
발 치수를 재고 본을 그릴 땐
걸음걸이가 가볍고
백바지에 백구두라
아주 멋있어 보일 거란
망상에 빠졌었는데
막상 신어보니까
망상은 역시나 망상이었다.
세상살이가
꿈꾼다는 것은 행복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후엔
허망만 남는다는 것을
나는 느끼질 못했었다.
2023.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