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 시집문고

마지막 하루/오신탁

청산 /임흥윤 2023. 5. 11. 17:57



마지막 하루
             오신탁

왜인지 어머니가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뵙지 않으면 영영 뵙지 못한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늦가을 추수는 모두 끝나고 겨울을 준비해야 하기에 어머니가 계시는 향님 집에도 사과는 모두 창고에 들여놓았고 겨울 준비로 바쁘게 지내신다.
어머니는 아들이 온 것을 보고는 호미를 들고 따라오라 하신다. 뒷마당 처마밑을 파헤치기에 무엇일까 궁금했다. 다름 아닌 밤이 한가득 들어있어 놀랐다. 그냥 두시면 되지 왜 땅에다 묻어 두셨냐고 하니 아들이 언제 올지 몰라서 그러셨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오래 싱싱하게 보관하고프신 마음이셨다. 대추며 콩이며 한봉다리씩 담아내시기에 바쁘시다.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옷장 깊숙이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시는데 손수건 안에 돈이 들어 있었다. 이것 또한 나의 가방 깊숙이 넣어 주시고는 굶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어머니는 전혀 드시지도 않으시면서 자식 사랑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오늘밤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와 단둘이 손 꼭 잡고 밤을 지새웠다.
차마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게 되었지만 지나고 보니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통일교회에 다니시고 기성축복받으셨다고 하나님께 꼭 말씀드리라고 신신당부를 드렸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신다.
새까만 손등과 손톱은 모두 기형으로 변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고생하신 흔적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7남매를 모두 키우시고 막내에서 두 번째인 나는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아들이다.
시집오셔서 호랑이 같으신 할머니 밑에서 갖은 고생을 하셨다고 마을 어른들께 들었다. 유독 말이 없으신 어머니는 옛날, 설움 받고 고생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한마디도 안 하셨다. 할머니는 생존 시에 남자 같은 할머니 셨다고 하신다. 남자 어른들도 꼼짝 못 할 정도로 무서워하셨다고 한다. 불의 앞에 당당히 서서 혼을 내는 할머니의 생전 모습에서 마치 나의 모습이 그러함을 느낄 때가 있다.
꼭 나의 모습이 할머니란 생각에 어머니는 고생하셨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손등을 바라보며 두 손 꼭 잡고 우리들 키워 주시느라 고맙고 감사드린다고 말씀을 수십 번도 더 해드렸다.
옷장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찾으신다.
다름 아닌 은반지였다. 나의 손가락에 끼워 주시며 아무 말도 않으신다.
아! 우리 어머니 오늘 뵈면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함께 드러누워 나는 어머니께 아기가 되어 드리기로 했다.  축 늘어진 가슴을 만지작 거리며
어머니 꼭지도 물고 아기처럼 굴었다.  빙그레 웃으시는 어머니의 입가를 보며 행복감을 느꼈다. 어머니도 나의 어깨를 끌어안으시고는 꼭 안아 주셨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내가 제일 엄마젖 먹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머니도 그렇다며 다섯 살 때까지 동생과 함께 먹었다고 증언도 해주신다.
밤새 잠 못 이루며 함께한 저녁 시간이 행복이 있으면서도 서글프고 슬픔이 밀려와 눈물이 나온다.
꼭 부둥켜안고 어머니와 함께 잠이 들었다.
어머니는 언제 일어나셨는지 또 트렁크에 실을 먹거리를 준비하고 계신다.
트렁크가 꽉 차서 이제 됐다고 말씀드려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어머니의 눈을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후 어머니는 일주일 후 새벽에 마당 쓰시다가 어지럽다며 방에 들어가시고는 인기척이 없으셨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도 안 나오셔서 들어가 보니 정신이 없이 주무시고 계신다고 해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영영 돌아오시지 않으신 우리 어머니!
너무나 슬프고 허망해 목놓아 울고 말았다.
일주일 전 어머니와 대화를 하고 어루만지셨던 어머니, 이제는 그런 시간도 다시는 없음에 눈물만이 가슴을 적실뿐 말이 없으시다.
어머니의 반지며 용돈을 드리지는 못할망정 받아 들었던 일주일 전 행동들이 아직도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나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슬픔보다 함께했던 아이놀이와 영계에 가시면 꼭 참부모님을 찾으시라는 당부의 말씀이 어머니에 대해 효도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어머니 성화식에서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왜 울지 않냐는 소리를 들어도 담담했다.
어머니와의 하룻밤 행복이 성화식장의 행사보다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머니의 은 가락지를 끼는 날에는 꿈속에 나타나신다. 신기한 가락지, 나는 더 이상 끼지 않기로 했다

                           2023.5.11.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