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 시집문고

모내기를 끝내고/오신탁

청산 /임흥윤 2023. 5. 31. 12:46



모내기를 끝내고
                 오신탁

잘 정돈된 다랭이 논에 줄 따라 심어진 모들이 기우뚱 거리며 오뚝이처럼 잘도 서서 버틴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는 내내 하루의 고됨이 모두 풀린다.
논두렁 돌담 구멍 속에서 황급히 날아가는 새를 보고 놀라워 그 속을 들여다보니 자그마한 새알이 네 개가 들어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어미새들은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허공을 맵 돈다. 어찌 될까 걱정하는 어미새들의 보호본능을 알기에 얼른 자리를 피해 주었다.
작년에도 그 자리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하더니 매년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자연이 주는 행복을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새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종일 햇볕에 그을려 팔과 얼굴은 까메도 마음만큼은 세상 다 가진 것처럼 부자이다.
아카시아 향기는 저녁이 되어도 사라질 줄 모르고 배고픈 나를 더욱 집으로 가도록 재촉한다. 멀리서 바라본 다랑논 13 계단 논들을 바라보니 저녁노을에 비친 논바닥에 그리워진 그림자들은 한 폭의 수묵화로 다가온다.
며칠 전부터 많은 비를 내려주어 하늘도 모내기를 위해 , 농민들에게 위로가 되게 해 주어 행복한 마음은 끝날 줄 모른다.
모내기를 위해 새벽부터 수고한 일소를 끌고, 지게에는 풀더미를 잔뜩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소와 함께 가뿐한 발걸음이 되어 주었다.
한 달이 지나 두 달이 되면 무릎 위까지 커가는 벼들을 볼 때면 얼마나 기쁜지 미리 그 기쁨을 상상이라도 해본다.
잡풀을 뽑아주고 농약을 치고 벼이삭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 때면 일 년 농사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잠들 수 없는 밤을 느티나무 정자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멀리 보이는 모든 논에도 모내기가 끝나 별빛에 반사된 물이 차있는 논바닥에 투영되어 별빛 하늘과 논바닥의 모습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듯하다.
개구리 합창 소리는 늦은 밤이 되었는데도 그칠 줄 모르고 울어댄다. 매일 초저녁부터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소리에 익숙해 시끄럽지 않게 들려오고 오히려 아름다운 음악소리처럼 들려온다.
수많은 별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지만 내일 아침까지 셀 수가 없어 포기하고야 만다. 그런 반짝이는 별 속에 파묻혀 하모니카를 꺼내 조용히 불러본다. 과수원길의 아카시아꽃 향기를 직접 맡으며 불러보는 멜로디는 심금을 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고댄 하루의 일과를 위로해 준다.
어느새 메리는 하모니카 소리를 들었는지 꼬리를 흔들며 집에 가자고 재촉한다. 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메리는 둘도 없는 친구나 다름없다.
데카르트는 동물은 단지 기계라고 했다. 또 칸트는 동물은 자의식이 없다고 했던 책들이 생각난다.
사람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연을 이용해도 무방한 물건으로 여겨왔다. 그래서인지 자연을 함부로 대하고 있다.
메리를 볼 때마다 영리함을 느낀다
사람과 교감하는 메리의 행동을 볼 때마다 느낀다.
말 못 하는 모내기한 논에도 사람처럼 말만 못 할 뿐이지 나름대로 생각해 내고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모를 뿐이다
결국은 사람이 무지한 거나 다름없다.
식물과 동물과 대화가 가능하다고 지음 받았다는 인간은 언제쯤 가능할지 가늠할 수가 없다.
모내기하는 내내 향기를 뿜어내는 아키시 나무는 건드리면 건드릴 수 록 가시를 길게 내어 방어한다고 한다.
모내기한 옆 두 마지기 밭에는 작약꽃이 장관이다.  저녁이 되면 희한하게 꽃을 오므린다.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꽃가루를 보호하기 위함인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름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들을 보면 말만 못 할 뿐이지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서 가자고 메리는 꼬리를 휘젓는다. 고단한 하루인데도 잠은 오지 않아 하늘만 바라보면 볼수록 신기한 광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광경이다. 그런 광경을 뒤로한 채 개구리 소리도 점점 잦아져 작게 들려온다.  내일 아침이면 또 시끄럽게 울어댈 생각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메리와 개구리 소리와 하늘의 별들은 모내기를 끝낸 노고를 위로해 준 시간이 아름다운 시간으로 가슴속 깊이 남아진다.

                               2023.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