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의 가훈/박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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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라이의 가훈 ~
& 여성에 대하여
- 박정석 -
사무라이(侍)의 무가(武家) 집단은
여성에 대하여 배려를 많이 했었다.
사무라이(侍)라고 하면 막부를 연상하게 된다. 일본에 사무라이 집단인, 무가(武家)들의 막부 시대는 세번 있었다.
1️⃣처음 시작된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는 12세기 말이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막부(幕府)를 세우고 그 본거지를 가마쿠라(鎌倉)에 설치하였다.
2️⃣그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가 세워졌다. 그러나 15세기 후반 급격히 막부의 세력이 약해지자 지방의 제후들이 서로 다툼이 시작 되었다. 📍이를 <전국시대>라 한다.
전국 시대는 약 100년간 지속 되었는데, 혼란을 질서로 통일한 사람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그는 새로운 막부는 설치하지 못하고, 남아도는 무장 집단인 사무라이들의 반란을 막고 활용을 고민했었다. 결론은 국토 확장을 위한 해외원정(임진왜란) 전쟁 중에 일본에서 죽었다.
그 뒤를 이어서 1603년 부하였던 3️⃣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의 도쿄(東京)에 [에도(江戸) 막부]를 설치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1868년의 메이지 유신 때까지 260여 년 동안 일본을 지배하였다.
🌱사무라이 시대의 여성관은 지금 못지 않게 선진적이었다.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를 만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의 동시대 부하의 자녀 가훈집을 통하여 시대상을 본다.
[호조 시게토키]의 두권의 가훈집에서 공통점은 여성에 대한 높은 인권이 존중되어졌음을 확인되었다.
"아내감은 심성을 잘 보고, 한 사람으로 정해야 한다." 당시 아시아의 일반적 풍속은 이슬람권이나 유교권 등 대부분이 일부다처제였다.
시게토키는 여자와 아이들을 경시하지 않았다.
"아무리 미천한 여자라도 여자의 난처한 상황을 이야기 해서는 안된다. 나쁜 일은 감추어 주어야 한다." "부인이나 여자가 숨어 있을 만한 장소는 보지말고 지나치고 못 본 척해야 한다."
이 정도면 현대의 남성들을 부끄럽게하는 가마쿠라 시대의 여성 존중사상이다.
📍[일부일처제]는 무가(武家)
의 가훈이었다. 무가의 자손은 물론이고 아래 백성들도 지켜야 했던 것이다. 다만 무가(武家) 위의 천황가나 귀족 가문에게는 자신들의 규범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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