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기억/정경순

초등학교 때 기억
정경순
바람을 가르며 푸른 하늘을 향해
신나게 달렸던 그 운동장
고무줄 뛰기 놀이도 재밌어
수업 마치는 종소리가 나기만 하면
달려 나가 놀았던 그 시절
키가 크고 빨랐던 덕분일까
높이 뛰기 멀리뛰기 군 대표로 뽑혀
단체 훈련을 받고, 도 대회도 나가고
학교 대표 핸드볼 선수로 뛰며
여러 학교를 다니며
경기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조숙했던 옆집 난이가 질투로 나를 괴롭힌 사건이었다.
그녀는 육상부에 못 들어오고 육상부에서 나랑 함께 연습하던 우리 반 반장을 짝사랑해서 나를 부러워했었던 것 같다. 5학년으로 올라갔을 즈음부터 같은 반 아이들이 나와는 대화를 안 하기 시작했다. 단짝 점숙이 마저 만나기만 하면 잡던 손을 빼며 미안하다며 돌아서 갔다.
결국, 반 전체의 여자아이들이 난이 눈치를 보며 나와는 상대를 안 해주는 왕따를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때는 난리가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힘든 시간이었다.
인간이 뭔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 후 나는 시골 학교에 대한 미련 없이
대도시 부산으로 전학하고, 시간이 흘러 대학 가서야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반장이었던 용무를 우연히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옛날이야기를 나누다 드디어 그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아직 이성을 생각도 못했던 아이였지만 난이는 조숙했었던 것 같다.
가끔 한국에 가면 친정 엄마에게
옆집 난이 소식을 묻곤 한다. 어릴 때 그렇게 큰 충격을 준 그 친구를 잊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친구의 인생을 가끔 지켜봐도 아이나 어른이나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여러 사람에게 반영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
대학 4학년 때 생사를 걸고 개척전도를 나갔을 때 만났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그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 돌아오셨다고 하시며 “내가 죽어 가보니 영계는 사랑의 세계였다. 진심으로 사랑한 관계만이 영계에서 남더라 “ 는 말씀을~~.
2024.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