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심정문학

2024련 심정문학 19호
내가 신앙을 하는 이유는 진실과 양심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편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정말 옳은 길일까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잘못된 길을 옳다고 생각하면서 가고 있으니까
가을은 언제나 새롭게 나를 일께우고 9월의 하늘은 너무나 아름답다 ~사광기 수필~p232
)심정문학상 수상작품코너
~1편~
엄마의 시간 2
천상례
소진된 엄마의 시간이
마른 나뭇잎처럼
바람에 흔들려서 아프고
힘없는 엄마의 숨소리가
찬서리리 달빛 속
외로운 풀벌레의
연가로 구슬프네
수많은 세월
호수처럼 깊고 푸른
가슴에 고인 눈물
수문을 열듯 한의 문을 열고
다 흘려 보내야 한다
가는 실 끝에 놓인 맥박같이
잡으면 파르르 떨리는 손
엄마의 시간이
가늘어진 머리카락처럼
하나 둘 빠져 나가고 있다
~ 2편~
잊고 있었던 시간
천상례
잊었던 시간을 찾았다
결별한 것도 아닌데
뚝 끊어진 소식
한 권의 시집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었네
산책 삼아서 다니던
정들었던 오솔길에서
꼬리를 요리조리 흔들던 강아지풀
귀엽다고 데려와
책갈피 속에 두고 선 잊었다
세월가면 있는가 했던가
무심했던 것인가
사라져 간 추억을 알알이 간직하고
여전히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며
변함없이 반기네
너무 오랜세월
잊고 있었던 그 오솔길
오란만에 강아지풀 손잡고 산책을 다녀오네
~3편~
노을길을 걸어서
천상례
삶이
노을빛 끝자락에 서면
진달래 고운 색
치마저고리 갈아입고
인생이라 불렀던 그길을
돌아서서 바라 보리라
어스름 땅거미가
들길을 걸어오면
삶이라는 짐을 벗어버리고
노을길을 걸어서
별들이 손짓하는
은하수 다리를 건너가 리라
4편
슬픔을 풀어내다
천상례
오이 꼭지보다 쓴 슬픔은
시의 눈물로도 위로받지 못하고
담즙으로도 삭아지지 않아
차가운 것에도 화상을 입게 되네
머리카락에 다닥다닥 붙어 기생하는 서캐같이
다 잡아 내지 않으면 탈피하여
온 머리를 괴롭히는 작아도 징글 한 이처럼
가슴에 틀어박힌 슬픔이 스멀댄다
얼음강을 건너온 봄꽃
봄꽃보다 붉은 울 엄마의 서러움
노을빛 내리는 저녁 강가에 서면 사라질까
어둠을 하얗게 풀어낼 달이 뜨면 잊어질까
손아귀의 힘 같은 한도 기력 떨어지면 풀어질까
부드러운 샛별의 눈으로 임이 부르시면
슬픔을 풀어 꽃길 만들어 놓고
하늘길 오르시는 모습 고이 보고 싶어요
5편
건망증
천상례
박사님 하고 부르면
"응, 밥사라고" 그 말씀을 곧 잘하시는
임종성박사님의 강의에서 배운
여러 시 중에 짧은 시 한 편을
기력 떨어진 머리가 겨우 붙들고 하산의 계단을 내려온다
한 달에 두 번
시 강의를 마치고 어둠이 내린 저녁
단골 할머니보쌈집에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은
삶이 모퉁이를 돌듯 우회적 좌회전 그리고 직진해야 한다
담벼락에 붙어선 나무는
골목길의 한적함에 외로움이 많은지 목을 길게 빼고 있고
길고양이 지나가는 것을 잠시 보다가 외우던 시를 잃어버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어둠은 건달처럼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가로등은 잘못을 들켜버린 아이처럼 하얗게 질려 있고
나뭇잎은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고 있다
어느새 나의 의심을 들여다 보고
훔쳐가지 않았다는 결백의 눈짓을 보내온다
제상에 올리려는 생선을 줄타기로 훔쳐먹은 고양이처럼
건망증이란 녀석이 시를 꿀꺽 삼키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네
이런 도둑고양이 같으니라고
6편
사랑의 면역
천상례
좋은 것은 함께 나눌수록
기쁨과 행복이 배가 되지만
감정을 건드린 뾰족한 말은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내가 가진 사랑의 면역보다
네가 가진 사랑의 면역보다
독한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가
우리 사이에 침범하였을 때
믿음과 신뢰의 면역은 얼마나 될까
우리 사이에 비상등이 켜지면
멀어질까 가까워질까
어느 곳에서도 변하지 않을
참사랑의 면역은 얼마나 될까
7편
첫눈을 맞으면
천상례
첫눈을 맞으면
좋은 일이 생긴 다는 말을 믿습니다
희끗한 머리카락 수만큼이나
아름다웠던 날들을 기억하고
첫눈을 함박눈으로 맞았기에 기쁜 일도
곱절로 생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철새가 이동하는 먼 거리만큼이나
삶의 날이 숨차고 힘들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용감하게 첫발을 디디며
먼 길을 향해 일어서는 당신들에게도
첫눈이 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멀리 있는 그리운 친구에게도
바람의 옷 속에 넣어 보내겠습니다
그동안 꿈꿔 온 모두의 소망이 새해에는
꼭 이루어 지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프로필)
심정문학 /청옥문학/천성문학회원
시의전당문학대상
청옥문학상우수상/천성문학상우수상
효정문학 최우수상/소호 문화상
저서 <바람의 아픔/엄마의외출/슬픔을 플어내다 >외 동인지다수
p71
2024년4월 18일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