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기

살아내기
오신탁
둘레길을 걷는 이유는 운동이다. 하루 일만보 걷기는 부족해도 두어시간 걷다보면 다리에 근육이 들어선 느낌이 든다.
주로 점심 시간대에 찾아가면 아무도 없는 둘레길에 혼자만의 산주인이 되어보는 시간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나즈막한 고개 언덕 벤치에 앉아 조심스럽게 하모니카를 불어본다. 저달이 구름에 가리우듯이 사노라면 흐린날도 있으오리다~~. 몇곡 불러 제끼고 나면 마음에 안정을 찾게 해준다.
보청기를 끼고 연주할때는 하모니카 특유의 구수하고 청아한 기계음 소리가 나의 마음 구석까지 음율이 파고든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트럼펫 연주 소리는 어떨까? 생각해 보지만 고음에 주변 산행인들께 피해가 갈것 같다.
행복나눔방의 연주가들의 연주를 몇 번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소리와 함께 합주하는 소리는 색다르다. 가슴에 울림이 다르다.
한번쯤 깊은 산속에서 마음껏 불러보고 싶은 트럼펫, 생각만 해도 마법에 빠져들것 같다.
밴치에 다리를 꼬고 앉아 연주는 접어두고 멀리 보이는 시내와 그리고 인천대교와 인천공항을 바라본다.
희미하게 보이는 대교위 자동차들의 움직임이 조그마한 장난감들이 굴러가듯이 보인다.
수십번 다녀왔을 그 길이다.
드라이브라도 하고 싶을때면 떠나고 싶은 길이다.
이제는 그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뚜벅뚜벅 내려오는 길이 허전하다. 둘레길 주변에 많은 참나무 빛깔이 까칠하다. 시커멓다
벌써 힘없는 낙엽들은 많이도 떨어져 있어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말없는 낙엽들은 오죽할까란 생각에 세상살이 다 그렇다고 애써 버무리지만 그러면서도 자신도 추스리기에 바쁘다.
나를 어르고 달래다 보니 어느덧 경원대로에 발길이 닿았다.
신호등 가로수 길에 수많은 은행나무 잎들이 가벼운 바람에도 힘없이 떨어진다. 아직 노랗게 물들지 않은 잎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떨어져 있다.
노랗게 물들어야 제 할 일을 다 했을텐데 안쓰런 얼굴로 바라본다.
지나온 호봉산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산은 그대로인데 변한건 나 자신이다. 마음이 변했다.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순간들이다.
오르고 내린 길을 바라 봐도 아무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 길위에서 하모니카를 불었고 그 청량한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었어도 되돌아와 먼 산을 바라보니 제자리에 서있다.
저녁나절 호봉산 정상에서 서해 인천공항을 바라보면 석양을 마주한다. 황금 노을이 휘황찬란하다.
아파트 꼭대기에서 바라볼 때도 있지만 앞을 가린 아파드단지로 볼 수 가 없게 되어 호봉산에 가야 찬란한 노을을 볼 수 가 있다.
붉게 물드는 광경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도 왜인지 나를 위로해줄 것 같은 분위기 같아서다.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돌릴때도 두려움과 무서움이 함께 밀려온다.
가벼워야 할 발길이 무겁게 느껴진다.
산에서 주운 도토리 몆알을 주머니에 넣고서 염주알 굴리듯 연신 매만져 보지만 허무한 가슴속은 채워지지 않는 텅빈 가슴이다. 그 속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찢기는 마음, 무엇으로 치유해야 할까? 마음의 병은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데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릴때마다 마음을 꼬집어 정신이 번쩍 들게한다.
반복적인 생활패턴이 연속이다.
집을 벗어나야 한다. 산에도 가고 어디론가 떠야야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정되어진다.
하모니카를 불었던 저 달이 구름에 가리우듯이 사노라면 흐린날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 흐른날이 지나면 밝은 날도 있다.
이왕이연 흐린 구름 걷어내고 밝게 살아가리라. 애쓰리라.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변함없이 말이다.
202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