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임흥윤 2025. 3. 26. 23:27

5번째 나

        임흥윤

 

2주에 한번 수요일 서창 노인복지관에 한문 공부를 하러 다닌다

오늘은 선생님께서  "나"라는 뜻을 가진 吾(나오)와 悟(깨달을 오) 자를 풀이해 주신다 

나(吾)는 다섯 번째부터 나를 센다는 뜻이란다

나무뿌리 가지 줄기 열매를 그려가며  보충 설명

뿌리는 1번 가지는 2번 줄기는 3번 열매는 4번  나무를 바라보는 내가 5선 번 째란다

먼저 나를 내세우지않는5섯번째가  "나"가 돼야 한단다

10진법 까지 들먹이며 5번째가 중싱심자리로 안전한 자리라고  강조하신다 

누구도 머무르고 싶지 않은  비어 있는 자리라서

청빈의 자리로 비움의 향기가 나는 자리란다 

 

나의 한문공부와 인연은 50년대 여섯 살 때부터였다

서당에서 훈장님 제일 앞에 앉아 몸을 좌우로 흔들며 천자문을 외웠다

사랑방에 둘러앉아 새끼 꼬는  동내 어르신들 앞에서 

천자문을 줄줄이 외우면 

"신동"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도 신동이라는  칭찬에 신이 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중학교 입학하고 1학년 첫 국어 수업시간엔 집주소와 자기 이름을 한문으로 쓸 수 있는 사람

선생님 말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손을 번쩍 들었다 

주소와 이름 한문으로 써보란다

망설임 없이 획하나 틀리지 않고 집주소와 林興輪 이름이 칠판 위에서 분필까지 부러 뜨리며 자랑 춤을 추었다

 

목회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절친은 만나자마자 숨 가쁘게 신학적 안목으로 

道~德~仁~義~禮~法(도덕인의예법) 한자 풀이를 장황하게 설명해 준다 

머리(首) 되시는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고 살야 하는데 

사람람들이 道를 상실했기 때문에 하늘부모님의 선하신 뜻대로 살지 못하므로 德이 나왔으나

德을 실행하지 못해 義가 나왔으며  義 또한 저버렸기에 禮(예절)이 나왔고... 예절 또한 지키지 않아 法으로  다스리는 세상이 되었다고 열변을 토하던 목사정년 퇴임한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한문 수업을 마치고 서창 도서관에 들려 

 "몸짓( 김응숙 수필)"과 인생이 시詩답지 않아서(유영만) 책을 반납하고 오는 길에 공원 벤치에 앉아

한문에 얽힌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시인들의  심상을 해하려 본다

 

얼마만큼 깊이 파내려 가야 물줄기를 만날 수 있을까

노년의 삶은 詩人이고 싶어

기성 작가들의 시집을 백여 권 넘게  탐독 필사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몸부림치며 컴 좌판을 두드려보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신기루이다

내 안에서 내가 흐느끼는 신음 소리 

가 갸 거 겨 고 교 구 기  서당에서 들려오는 글 읽는 소리

들판에 개골개골 개구리 소리  "개구리 (한용운)詩"가 발목을 잡는다

 

몸이 나른하고 피곤하여 

쌍화탕과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몸밖에 있는지 몸 안에 있는지 내가 가벼운 깃털 되어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다

예전에 읽었던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작)가 생각난다

별나라에 두고 온 장미에게로 돌아기 위에 

모래사막에서 만났던 보아뱀에게 지신을 죽여 달라고...

보아뱀은 그렇수 없다고 말하지만 어린 왕자는 

보아뱀 독이 온몸으로 퍼져  죽으면

육신의 껍질을 벗고 장미가 기다리는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사정사정 애원을 한다

보아뱀은 거절을 못하고 어린왕자의 소원을 들어준다

어린 왕자는 보아뱀에게 물려 고목이 쓰러지듯  쓰러진다

사막한 가운데서 어린 왕자가 보아뱀에게 물려 쓸어지는 풍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한 폭의 풍경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는 장미가 있는 별나라로 향하는 어린 왕자가 되어 본다

다섯 번째가 "나"이기를 염원하며

허공 속 빈들에서  깃털로 본향을 향하는 나를 꿈꾼다 

                                        2025년 3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