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임흥윤 2025. 4. 2. 08:09



추억의 일기장
                   임흥윤

50년 전 일인대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일이 있다
중3학년때  하교 시 교실 청소하는데 
담임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셔서  얼굴이 사색되어하시는 말씀
오늘 장학사님께서  예고 없이 기습 방문한다고  
교실에 환경미화  해야 한 다시며 걱정이 태산이다
너희 중에  글을  좀 쓸 줄 아느냐며
청소하고 있는 우리를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신다
흥윤이가 잘 쓰는데요
이구동성으로 나를 지목한다
뒤  벽면  우리들의 자랑 게시판은  텅 비어 있었다

게시판 공백을 그림이나  글로 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의하한 눈초리로 선생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내 앞에서 한번 써보라  종이와 싸인펜을 주시며 긴 한숨까지 내신다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해 하교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 읽었다
시험기간에도  시험공부는 뒷전 도서관에서 빌려운 책만 읽었으니
학교성적은 하위권으로 형편없었다
친구들이 그런 내를  지목했으니 담임선생님께서 한숨을 쉴 수밖에
소설가나 시인이 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 이어서 나름대로 사색도 명상도 고전도
철학서적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며 열심히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다독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필사도 하면서

머리에 저장 각인된 명사들의
시어들를 짜깁기 하여 즉흥적으로
몇 편의 시를 써서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장학사님께서 교실을 둘러보시곤 뒷 벽면 게시판 앞에 서서 떠난 줄 모르고
내가 즉흥적으로  명사들의 시어를 조합하여
쓴 글을 한참이나 쳐다보시며
저  시가 학생이 쓴 시냐고 극찬하시며
고개까지 흔들었다고
담임 선생님은 물론 교장 선생님까지
장학사님께서 극찬에 덩달아  흡족해하셨단다
아무튼 인정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사건이 있은 후  몇몇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하며 가상 연애 달인이 되어갔다
                       2023.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