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의 그림자
윤순묵
나의 詩心은
아버지가 일군 작은 텃밭에서
비롯된다
먹을 갈아 붓글씨를 쓰던 책상에서
걸어 나오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퇴근하는 길
동네 어르신이 불러
함께 나누는 막걸리 한 잔
속앓이 하는 넋두리에서 흘러나오고
휴일이면 산에 올라
진달래와 머루, 달래 따 오시던
그 순수에서 나오고
태풍이 오면 논바닥에 쓰러진
벼이삭 세우던 뒷모습에서 나온다
남 앞에 서면 부끄럼을 잘 타는 어린 딸
그 자존감을 세워주려 토닥이며
웃음 짓던 모습에서 나오고
자식 사랑 채워주지 못한 시간 잡으려고
몸부림치던 마지막 숨소리에서 나온다
당신이 건너 간 강 바라보다
울컥 치미는 그리움에 사무쳐
꺼억대는 그 목젖에서 나온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당신이 파 놓은 깊은 이랑에
나를 묻을 수 없을 때도
나의 詩가 울렁이며 나온다
그 詩가 나오는 틈 새마다
강남 팔 차선 광장이나 골목어귀에서
흥과 어우러져 춤추는 내 분신 속에서
속으로 감추어진 내 그림자 뒤에서
詩心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詩의 그림자
MAY. 12. 2023
soolnee 윤순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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