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 시집문고

어느 가을날에/오신탁

청산 /임흥윤 2023. 10. 21. 10:16



어느 가을날에
         오신탁

덕망 있는 시인의 찻집에서 시 모임 갖던 날, 모두 설레는 가슴 한 줄기씩 붙들고 가까운 지인들은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다.
도심 속 언덕배기 위에 아랫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2층집은 시인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듯했다.
수많은 책들과 아기자기한 찻잔 소품들, 옛날 풍금까지 추억 속에서나 볼듯한 옛 물건들이 우리들을 편안하게 해 준다.
통창으로 훤히 보이는 가로수는 얼마나 큰지 창 가까이 가지를 뻗어 나뭇잎들과 얼굴을 맞대고 교감과 담소를 나눌 수 있다.
까치 한쌍은 모임을 축하라도 하는 듯 연신 까악 까악 소리 지른다.
주인집 시인님은 동료 시인들을 위해 미리 식사준비를 해놓았는지 금세 한 상 차려 내놓는다.
와인과 소고기를 준비해 건배사로 시작하는 식사는 맘껏 분위기를 올려놔 주었다.
멀리에서 다리가 불편한데도 천안에서 자서전을 냈다며 트렁크에 가득 넣어 무거운 케리어를 끌고 오는 정성에 존경과 감사로 마음으로부터  모두는 박수를 보냈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든다.
노 시인은 젊은 시절, 오대양 육대주를 활보하신 전력을 알기에 노익장을 과시하시는 노시인의 정성의 발걸음에 저절로 존경과 감사로 고개를 숙인다.
미산 시인님의 제안으로 뒤뜰 인왕산 둘레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따사로운 햇빛에 나른함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가을 시원한 바람이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행복함을 머금고 멀리 보이는 서울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한다.
바로 아래는 한옥마을이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멀리 고층빌딩과 아파트 숲들이 조화롭게 서울을 아름답게 해주고 있다.
시인들의 얼굴에도 금방 한 줄 쏟아 낼 것만 같은 시심이 가슴에서 요동치는 것 같아 보인다.
세대를 초월한 모임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노시인과 자리를 제공한 미산 시인님의 입담으로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기라성 같으신 시인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조금이라도 시심을 가슴에 담기 위해 마음을 모은다.
이전투구의 세상사는 곳에서 이곳 시인들의 모임을 통해 시끄러운 마음들을 잠재우고 고요함 속에서 안정을 찾아 더 좋은 작품을 써보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각자 돌아갈 때는 서로가 가져간 시집들을 나눠 가지며 서로 격려하며 시심을 담아내자고 손을 꼭 잡아준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창작방 팀장님과 뒷정리를 끝내고 아래로 보이는 고궁을 찾아 옛 선조들의 삶을 눈여겨보기로 했다.
많은 왕들과 신하들, 그 외 식솔들까지 이곳에서의 생활들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다 이곳에서의 생활들을 상상해 볼 때 가능할까 란 생각만이 마음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다.
고궁 한가운데 서서 선조들의 모습이 되어 보기로 했을 때 선조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의식주는 모두 똑같았으나 시대적 배경이 너무나 다르기에 그 어려운 시대를 살다 간 선조들께 감사와 위로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대들의 희생으로 지금 우리는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음에  이내 고개가 숙여진다.
평온해 보이는 서울 시내, 바라보는 눈에 따라 그 보자기를 풀어놓았을 때 과연 어떠한 문제 덩어리들이 나올까 두렵다.
정치적인 눈과 경제적인 눈으로 바라본 서울과, 나아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산더미처럼 높게 보여만 진다.
누군가 하겠지?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면 당장 버려야 할 생각들이다.
한 시대를 바라보는 눈은 어떠해야 하는지, 아픔과 평화가 교차하는 모습을 시인으로서 어떻게 표현해 내고 잠들은 영혼들을 깨울 것인지는 시인들의 작은 몫이란 생각이 들 때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잠시,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밴치에 앉아 시론을 펼친다.
나무 그늘에 앉아 커피를 마시니 바람까지 달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시론을 나눴던 시인들과의 이별을 하고 가을 차가운 바람에 나뭇잎은 하나 둘 떨어지는 거리를 쓸쓸히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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