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날의 매미소리
오신탁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앞마당 밤나무에도 뒤뜰 감나무, 대추나무에도 이웃집에 늘어선 과일나무에서 아침해가 동트자마자 우렁찬 합주 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깨운다.
늦잠 자는 아이들에겐 자명종이 되어 여간 듣기 싫은 소리로 들릴 것이지만 어른들에게는 하루를 출발하는 경쾌한 매미 소리는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아무리 매미 소리가 좋다 해도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울어댄다면 공해나 다름없다.
점심 식사 후 덥고 나른한 몸을 쉬기 위해 낮잠을 청할 때면 매미 울음소리는 듣기 싫다.
모두가 울어대면 소낙비 소리 같고 고요히 흐르는 강물소리 같고 해저음처럼 거대한 지축을 흔드는 소리 같다.
잠이 들려고 할 때면 잔잔한 호수에 나와 선 듯 고요하다.
지난 8월의 폭염에는 매미들은 맥을 못 추는지 확연히 줄어들었다.
아파트 가로수 벚나무에 옹기종기 붙어서 설설 기는 것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생기가 있을 때면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재발리 눈치채고 날아가버리는 기세는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세상에 나와 작게는 7일, 많게는 한 달을 사는 매미는 지난해 왔던 매미들의 자손인 셈이다.
매미의 생애는 너무 짧다. 매미들도 짧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짝을 찾는 일에 아름다운 생애를 바친다.
이 빛의 세상을 사는 동안 그들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악기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든다.
특유의 맴~맴~ 소리를 들어보면 그 소리엔 사랑과 애원과 애틋함과 그리움과 설렘, 외로움, 환희 또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는 듣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그렇게 소리는 우리들 마음에 다가온다.
뜨거운 여름날, 익숙하게 들려오는 매미소리는 언제 들어도 싫지 않고 그 어떤 악기로도 흉내 낼 수 없다.
매미 소리는 수천 년을 지나오면서도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 준 음악일 것이다.
매미들에게 여름은 본능의 한 때 인지도 모른다.
성충을 남기고 온몸을 불살라 죽어가는 모습에서 생명의 고귀함을 바라보게 해 준다.
여름날은 가고 악기들의 연주도 끝난다.
폭염에 몸서리치던 여름도, 장마도, 소나기 뒤의 무지개처럼 아쉽게 사라진다.
매미들은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긴 침묵뒤 그들의 후손들은 내년 여름이면 또다시 새로운 악기를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초입이다
매미가 떠난 그 빈자리에 풀벌레들이 들어선다.
도회지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들, 시골에 가는 날 저녁이면 어릴 때 듣던 풀벌레 소리가 창을 타고 요란하게 넘어온다. 여름날의 매미 악기 소리와 확연히 다른 악기 연주이다.
풀벌레 소리 가운데 단연코 빼어난 녀석은 귀뚜라미이다.
맑고 낭랑하다. 그 사이에 질세라 여치소리 방울벌레 소리도 내 소리도 들어 보라는 듯 사이사이로 파고든다.
여러 풀벌레가 들려주는 소리는 반짝이는 별빛의 조명을 받아 더 아름답게 들려온다.
가을날의 밤에는 풀벌레들의 세상이 되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별빛과 수묵화의 먼산을 바라보면서 풀벌레 소리들의 연주를 듣노라면 울음인지 노래인지 예쁘다.
풀벌레들의 세상이 왔다. 이들도 매미처럼 한때를 즐기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홀로 서있는 우리 자신도 이들처럼 생명이 길뿐, 한때인 것을 자각하게 해 준다.
나의 한때는 언제였던가?
지나갔는가? 아니면 지금인가? 앞으로 다가올 세상일까?
사실 젊은 날의 뜨거웠던 한때만 한때가 아닐 것이다.
더 멋진 한때는 언제일까? 매미나 풀벌레처럼 우렁차게 혹은 고요하게 멋진 연주를 해주었던 그때가 한때인 것처럼 우리네 삶에도 세상을 여유롭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지금이 아닐까 싶다.
거창한 한때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도 어찌 보면 한때이다.
그 한때를 위해 매미나 풀벌레처럼 무엇을 어떤 노래를 부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202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