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2

몸짓 /김응숙 수필집

청산 /임흥윤 2025. 3. 17. 11:15

몸짓
  김응숙 수필집


칼에 페인 사과 속살이 갈색으로 물들듯 세상에 베인 내 마음에 커피가 물들면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힌 채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p92

나는 눈물이 많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실컷 울고 나도 내 마음은 물에 물에 푹  젖은  늪처럼 축축하기만 했다 아무리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린 나이에도 감지 때문이다 그 문제란 지독한 가난이었다 p99

행여 상처를 입을까 봐 철갑 같은 바늘로 온몸을 빈틈없이 감싼 나의 슬픈 악어가 이제 점점 멀어지고 있다 p101

진정한 고수는 높은 곳에 있는 자가 아니라 나보다 딱 한수 앞에 있는 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 딱한 한 수는 고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감당할 수 없는 막막함이 언급해 오더라고 했다 p118

숲은 안다 겨울 냉기가 가시지 않는 숲 속에서 누구도 기척 내지 못하던 때에 저 가냘픈 꽃이 첫걸음을 내디뎠던 것을 사실 숲은 그녀들의 뜨거운 입김에  짐짓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키가 큰 나무들은 진달래를 굽어보며 그렇다고 설마 봄이오랴 냉소를 지을 수도 있다 어쩌면 해마다 꽃 실바람이 분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리라 p129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무겁다 성취의 이면에는 널 짙은 그림자가 따른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완벽한 인생이란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p136

물건은 세상의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소멸의 운명을 타고난다 다만 인연에 따라 쓰이고 달고 상처를 입으며 나름 과정을 거칠 뿐이다 그리 보면 한 인간의 인생이나 한 물건의 여정이나 다를 바가 없다 p142

우리는 좀 더 가치 있고  다양한 삶을 원하지만
그것은 단단한 일상이  받쳐 쥐야 가능한 일이다
남과 다르게 사는 것도 좋겠지만  때로는 남과 또 같은 일삼을 사는  것이  큰 행복이 될 때도 있다
비록 개성은 없지만  하나열이나  또 같은 저 붕어빵처럼 말이당 p176

  나의 단어와 문장에는 눈물이 번진다
이 눈물을 진주로 만들고 싶다
내 글에서 파도치는 슬픔이 문장 사이를 드나들며 상처를 위로하고 아물게 하고 마침내 영롱한 진주를 품게 되면 내 술법은 완성되는 것이리라 p180

야 4391, 너 참 잘살아왔다고
이제까지 하지 못한 말을 지금 너에게 꼭 해주고 싶어 p209

  
살아온 날들이 뜨거운 만큼 사연은 길어진다
차마 하지 못한 고백은 자기 동그란 구름 속에 붉은 글씨로 적혀 있고 그래도 남아있는 미련은 손흥빛 아쉬움이 되어 구름 가를 적시고 있다 p224

꿈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찢어져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꽉 쥔 깍지처럼 생각과 생각은 맞물려 있습니다
깍지의 미세한 사이마저 온갖 감정들이 악플처럼 엉켜 붙어 있어 도저히 틈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저희 표피는 여전히 마른 나뭇가지처럼 딱딱하고 완고합니다 이런 제게도 봄비가 스며들까요? p245

소녀는 바닷가에서 오래도록 흐느껴 울었다 서러움과 불안과 그리움이 눈물로 녹아내렸다  손녀는 혀를 내밀어 입술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맛보았다 짠맛이 났다  소녀는 문득 알게 되었다
저 밤바다가 눈물을 받아주고 있다는 것을 눈물처럼 짠맛을 내며 같이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p262

심상은  아무리 자라나도 무형이다....
심상은  단어와 문장에 갇혀  숨도 쉬지 못하고  이미지는 훼손된다
나는 알을 깨버린다 p262

2025년 3월 17일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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