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윤자료방/행복 심정 글

엣날의 그 집(박경리)/이어진

청산 /임흥윤 2026. 2. 12. 17:19



옛날의 그 집 (박경리)
               이어진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司馬遷)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본명 朴今伊 1926~2008)경남 통영生
근현대사에서 접한 작가중에 아주 귀하고 높게 바라보는
작가입니다. 많은 저서가 있지만 선생의 '토지'는
한 두 지면으로 독후를 올리지 못하겠습니다. 통영의 작가
한국문단의 거목을 넘어서 세계 누구와 비견해도 당당할
박경리선생을 조명합니다.

선생의 자술기 일부를 발췌합니다.
[ 나의 출생은 불합리했다. 이 허무한 세상에 왜 내가 태어났으랴 하는 따위의 뜻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부모들의 관계에서 온 나의 견해였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어머니에 대하여 타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적의에 찬 감정으로 시종 일관했다. 어찌하여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게 미워한 여인에게 나를 낳게 했는가 싶다.....]

1946년에 진주여고를 졸업한 뒤 곧 결혼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6·25가 터지면서 행방 불명이 되더니 1950년 말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그는 다시 세 살짜리 아들을 잃고맙니다. 선생은
“악이 승리한다는 절망”에 진절머리를 치면서 견뎌냅니다.

통영 서피랑에 선생의 생가가 있습니다.
사마천을 생각하며 견딘 옛날의 그집인듯 싶습니다.
통영 기념관이 있고, 원주에 문학관이 있습니다.
하동 평사리에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돌아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