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내기
오신탁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한다
주인의 손길을 통해 올곧게 자라고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내기 철이 다가올 때면 하늘의 도움이 없다면 모내기를 할 수 없다. 적당한 물이 있을 때면 논마다 물을 가득 채워 놓고 모내기 날을 잡는다. 개구리들은 알을 낳고 어미 개구리들은 온종일 개골개골 울어댄다.
모내기할 때가 되면 올챙이 알은 부화가 되어 꼬리가 달린 올챙이는 온 논바닥을 휘젓고 다닌다.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순번을 정해놓고 마을 사람들은 품앗이를 통해 돌아가며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는 쉽지 않다. 이른 봄 볍씨를 뿌려 벼싹이 나오도록 비닐을 씌우고 정성을 다해 모가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뼘이 자라면 이제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애써 키운 모들을 마을 어른들은 새벽 일찍 모여 모를 뽑아 한 묶음씩 묵는다. 모를 뽑을 때도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뽑으면 뿌리는 건사하지 못해 쓸모가 없는 모가 되기에 정성을 다해 모를 뽑아야 한다.
우리 집 모내기 때가 되면 어머니는 전날 장 봐온 재료로 열댓 명의 음식을 주위 어머니들의 품앗이로 준비한다
나는 경운기에 로터리를 장착하고 논바닥을 고르기 작전에 돌입한다. 시동을 걸고 딸딸 딸 소리를 흥겨운 가락 삼아 모를 심기 편하게 바닥을 골고루 다진다.
모래가 많은 논은 금방 가라앉아 빨리 심지 않으면 심기 느리고 손가락이 무척 아프다. 하지만 나는 꼼꼼하게 로터리를 쳤기에 어른들에게 칭찬도 받았다.
경운기에 로터리를 장착하고 논바닥을 다질 때가 정말 행복했다. 정겨운 소리와 물컹한 흙 감촉에 어른들의 칭찬과 내가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에 힘들 줄 몰랐던 그 시절이었다.
경운기를 이용하기 전에는 소를 이용해 논바닥을 다졌다. 옛 어른들의 힘들고 고단했던 모내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손이 빨라 다른 사람 두 배는 심는다.
대개 열명 안팎이 일렬횡대로 못줄 앞에 서서 할 때면 나는 제일 가운데 선다. 요령 많은 어른들, 양쪽에서 못줄을 잡는다. 허리 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대신 소리를 많이 지를 뿐이다.
심을 때도 눈치작전은 늘 존재한다 요령 피우는 얍삽한 어른들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가운데 서서 못줄 앞에 서서 거의 반은 심는다고 봐야 한다.
마을 어른들은 일 잘하는 나를 항상 데려간다. 그 대가로 돈도 많이 벌었다. 거의 이십여 일을 남의 모심기 다니면 주머니가 두둑했다.
우리 아버지는 그 돈 달라고는 한 마디도 안 하셨다.
나중에 막걸리 사드리고 집에 필요한 농기구들을 사는데 보탰다.
경운기 로터리를 사용하기 전에는 우리 아버지들은 소를 이용해 섯가래질을 했으니 얼마나 힘들게 모내기를 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온몸을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신 어른들 , 모내기를 통한 수고에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자리를 비운사이 이랴! 소리를 지르며 고삐를 잡으니 아버지께서는 편하게 하시는 것 같은데 소 따로 섯가래 따로 우왕 좌와의 경험을 해보았다.
바닥을 골고루 펴지게 해야 하고 물이 너무 많아도 안되고 없어도 안된다. 물이 많으면 모가 등등 떠다닌다.
다음날 아침에 보면 정성껏 심지 않은 모는 모두 둥둥 떠있다. 주인은 어김없이 빈자리를 찾아 심어야 하는 이중 일이 되고 만다.
보통 모는 세 개나 네 가닥을 심어야 한다. 빠르게 심는다고 한 포기나 대여섯 가닥을 심으면 문제가 있다.
다음날 주인은 일일이 바닥을 살피며 빈자리를 찾아 심어야 한다.
어느 해인가 농촌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농활을 왔다. 모내기를 시켰는데 엉망진창이다. 도회지 학생들은 모도 처음 보았는지 주인이 시범을 보였는데도 머리 따로 손따로 놀고 있다. 한 포기 심고 허리 아프다고 한참을 서있는다. 양쪽에서 못줄 넘어가요! 소리가 나면 덜 심었는데도 허둥지둥 넘어간다. 주인은 그 광경을 보며 어땠을까? 다음날 갈아엎고 다시 싶었을 정도이니 다시는 농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많은 학생들 국수 삶아다 간식 대접하고 점심도 대접하랴 어머니들의 수고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또 사과 꽃잎 따기와 적과 한다고 시켰는데 멀쩡한 어린 사과를 따내는 불상사가 일어나기가 부지기수다. 순 엉터리인 농활의 학생들만이 죄인이 되고 말았다.
농사도 숙련된 사람이 해야 한다. 진지하지 못한 농활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때만큼은 그들 나름 경험이었고 보람이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손수 모내기가 남아 있다. 이양기란 새로운 기계가 모내기를 대신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모른다. 벼배기까지 탈곡까지 수확으로 이어지니 해볼 만한 농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23.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