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깃발 아래에서
임흥윤
푸른 녹십자 깃발이 나부끼는 매혈의 집 앞,
나는 아침 퇴근길을 걸었다. 섬유공장에서 밤새 기계를 돌리고 나온 몸은 축 늘어졌고, 눈꺼풀은 모래처럼 무거웠다.
빈민촌 다락방 월세방에서 살아가는 내게 하루하루는 생존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날 아침은 조금 달랐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그 집을 찾아갔다.
매혈의 집 안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누렇게 뜨고, 핏기가 없었다.
옷차림은 수수했고, 형색은 초라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내게 조용히 귀띔해줬다.
“50킬로 안 넘으면 피 못 판다카더라. 물 많이 마셔라. 나는 빈속에 물로 배 채운다.”
어떤 이는 돌멩이를 몰래 주머니에 넣고 저울에 오른다며,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웃음 뒤엔 피로가 숨어 있었다.
나는 평소 몸무게가 55킬로였기에 걱정 없이 저울에 올랐다.
그런데 저울의 눈금은 간신히 49에서 멈췄다.
한 끗 차이였다.
나는 그날 피 한 방울 팔지 못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초라하고 서글펐다.
아침밥 한 끼를 거른 탓일까.
혹은 그 아침의 빈속이, 내가 가진 신념의 가벼움이었을까.
게으름을 신념으로 위장하며 “나는 단식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거룩함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 잡지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피를 팔아 동생 학비를 마련한 형의 이야기.”
그 글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꿔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신학교 다니는 죽마고우에게 학비를 보태주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여기에 왔는데, 결국 나는 빈손이었다.
녹십자 깃발은 세찬 바람을 타고 힘차게 펄럭였다.
마치 잘 가라, 다음엔 포동포동 살이 올라 돌아오라 말하는 듯했다.
깃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말했다.
“피를 팔러 온 자여, 너도 굶주렸구나. 피 한 방울도 남기기 힘든 너의 삶 또한, 누군가에게는 아플 만큼 귀하구나.”
매혈의 집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다.
거룩함은 피를 파는 행동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있음을.
누구를 위한다는 마음은 손에 쥔 액수보다 깊다는 것을.
그날 나는 한 방울의 피도 팔지 못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분명히 깎이고, 또 다듬어졌다.
아마도, 마음이란 이름의 형상이.
그 집을 떠나며 본 마지막 풍경은,
푸르게 펄럭이던 깃발이었다.
붉은 피가 흐르던 그 집 앞,
푸른 깃발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세상에 가장 조용히 위로하는 방식으로.
2025년 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