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글(수필 ·꽁트·유모어)

징계의 결단

청산 /임흥윤 2025. 4. 12. 13:53



징계의 결단
청산 / 임흥윤

문제가 생겼다. 모 카페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침묵 속의 눈빛들은 조심스럽고, 무겁고, 애틋했다. 감정이 앞서 상처 주지 않으려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던 그 시선들, 그 깊은 체념의 고요를 깨고 임 박사님이 입을 여셨다.

그분은 평소에도 늘 후배들을 따뜻하게 이끌어주시던 분이다. 이 날도 조심스레 자신의 과거를 꺼내셨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가슴 아픈 경험, 그리고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하셨다는 고백. 해운대 바닷가에서 삶을 마감하려던 순간조차 있었다며, 그러나 들꽃 향에 취하고 파도 소리에 위로받으며 삶의 길을 다시 걸었다고 하셨다. 곧은 길이 아니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숲길을, 혼자 걸으며 자아를 돌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음 섞인 말투로 여쭈었다. “박사님, 제가 보석으로 보이신다면 감정 한번 해 주시겠습니까?”
박사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직은 몰라. 돌인지 보석인지...”

결국, 논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픈 결정을 내려야 했다. 병든 나무를 도려내야 숲을 지킬 수 있듯이, 조직의 건강을 위해 물의를 일으킨 회원은 퇴출시키기로 결론지었다. 억울하게 연루된 회장도 징계받기로 했고, 그 공석은 임 박사님이 잠시 대신 맡기로 하셨다.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 무거운 마음뿐이었다.

서로 한 발짝씩만 양보했다면 어땠을까. 사랑이 아닌 집착, 이기심, 그리고 내면의 상처들이 만들어낸 갈등은 결국 상처만 남겼다. 울고 있는 내면의 어린아이는 아무도 보지 못한 채, 분노만이 오갔다.

어릴 적, 마을에서 부정을 저지른 이는 멍석말이와 몽둥이찜질로 마을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어떤 부족은 다르다고 했다. 허물을 저지른 자의 선행을 말해주고, 그를 위한 잔치를 열며,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준다고. 진정한 용서, 그것은 따로 말로 설명할 필요 없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나는 이 사태를 보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마음을 동시에 들여다보고자 했다. 흑백의 논리로 옳고 그름을 나누기 전에, 내 마음부터 돌아보았다. 징계란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다시 공동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결단이어야 한다. 그 안에는 단호함과 함께 연민,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날 배웠다.
2025 년 4윌12일 수정 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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