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윤자료방/행복 심정 글

심정문학기행 탐방기

청산 /임흥윤 2025. 7. 17. 19:18



문학기행 탐방기
            여국동

한국 최고의 시인, 미당을 만나 인생을 닮아가다

원계 여국동

문학에 대한 갈급함이 깊어가던 즈음, 심정문학회에서 문학탐방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영남지회 창립 모임에서 따뜻한 정을 느낀 터라, 문병조 회장의 권유에 따라 회원들과 가까워지고자 처음으로 문학기행에 동참했다.

일정은 부안의 미당시문학관을 중심으로 석정문학관, 매창테마관 등이다. 나는 김천에서, 문 회장은 진해에서 출발하여 함양군청에서 합류해 부안으로 향했다. 출발 후 안경을 차에 두고 다시 군청으로 돌아가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지만, 여유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미당시문학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고창의 ‘만나식당’에서 청국장으로 든든히 점심을 먹은 후, 미당시문학관을 찾았다.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문학관을 둘러보며 미당 서정주 시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접했다.

해설사는 말했다.
“미당 서정주는 생애 85년 중 70년을 시와 함께했습니다. 피란과 곡절이 많은 삶 속에서도 1,000여 편의 시를 남겼고, 시집도 15권에 달합니다. 장수성과 다산성 모두 언어의 연금술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는 우리말 시인 중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할 수 있지요.”

이어 해설사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행적에 대한 오해도 있으나, 강요된 글쓰기였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반성과 사과를 남겼고, 이후 수많은 시편으로 민족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그 공적 역시 함께 평가받기를 바랍니다.”

그의 사적인 삶 또한 애틋하다. 두 아들과 세 손자를 둔 자상한 아버지이자 인자한 할아버지였으며, 효자로도 알려져 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곡기를 끊고 두 달 반 만에 뒤따랐다는 이야기는 그의 순애보적 사랑을 상징한다. 고향 질마재에 묘소가 있으며, 생가와 문학관이 함께 보존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후 시낭송 시간이 이어졌다. 고종원 고문과 이길연 회장의 낭송에 박수가 터졌고, ‘국화 옆에서’는 다시금 가슴을 울렸다.

> 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미당의 호 ‘未堂’은 ‘아직 미완의 사람’이라는 뜻. 그는 끊임없이 부족함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한, 영원한 소년의 자세로 시를 대했던 시인이었다. 그 열정과 진심은 문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탐방이 끝나갈 무렵, 최홍길 편집장에게 말했다.
“이번 21호에 시 다섯 편을 냈습니다. 아직 등단하지는 않았는데요... 신인상으로 봐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 “예, 한번 보겠습니다.”
그 짧은 말에 등단의 꿈을 키워보았다.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일정인 석정문학관으로 향했다.

석정문학관

신석정 시인의 문학관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해설사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16세에 조선일보에 작품을 투고했고, 24세에 시문학에 「선물」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35세에 첫 시집을 출간했고, 번역과 평론, 예술활동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그의 좌우명은 ‘志在高山流水’—높은 산과 흐르는 물처럼 자연을 닮은 시정신을 추구했다.
신동기 할아버지 덕분에 한학에 밝아, 어린 나이부터 한문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관람 후, 최 편집장과 2층 휴게실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정담을 나눴다.

매창테마관

매창공원에 차를 주차하고 걷다 보니, 시비에 새겨진 「임생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 중 한 명, 이매창의 흔적을 간직한 매창테마관이다.
직원의 안내로 매창의 생애를 들었다. 본명은 향금(香今), 자는 천향(天香), 호는 매창. 조선 3대 기생으로, 시와 노래, 거문고에 능했고 많은 문사들과 교류하며 지조 있는 삶을 살았다.

> 임생각 – 이매창
애끓는 정, 말로는 다 못하여
밤새워 머리칼이 반이나 셌고나...



허균과의 교류는 특히 유명하다. 그와 10년 가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학적 우정을 나누었고, 그는 그녀를 ‘지조 있는 예술가’로 기억했다. 매창은 천민이었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시인이자 풍류를 아는 사람이었다.

채석강

시간이 여유로워 채석강도 들렀다. 변산반도 격포항의 절경은 압도적이었다.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달 그림자를 잡다 강에 빠졌다는 전설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설명이 있다. 해 질 녘, 붉게 물든 암석과 바다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서해 3대 낙조 중 하나로 꼽힐 만한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적벽강과 채석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며 작품의 영감을 떠올렸다.

식사는 채석강 인근의 맛집에서 해물요리로 마무리되었다. 따뜻한 식사와 함께 부안의 정을 느끼며 하루를 정리했다.

회원들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시낭송을 하며 친목을 다졌고, 나는 광주에 사는 김형근 시인과 함께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김천으로 귀향했다. 새벽에 도착하며, 하루였지만 마음은 길고 깊은 여운을 간직한 일정이었다.

남은 회원들은 부안가정교회에서 시낭송과 노래로 분위기를 돋웠고, 정읍사와 마이골 발효식품도 들러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다.

맺으며

나는 미당의 모든 시를 타이핑해 그의 인생과 문학세계를 배우려 했다. 신석정의 시적 깊이는 놀라웠고, 매창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예술인이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는 시대를 대표한 시인들과, 지조와 능력을 갖춘 문학인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게 될 때, ‘기억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임흥윤자료방 > 행복 심정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애축승자  (0) 2025.07.18
김영석 삼행시/김형근 시인 작  (0) 2025.07.18
유근순 삼행시/김형근 시인 작  (0) 2025.07.17
평화통일의 꿈이여  (0) 2025.07.17
가슴속에 꽃이피면  (0)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