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어둠이 오는 길목
잠깐 보이는 검푸른 하늘에 앞에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돌아보지 않아도 삐뚤어진 걸음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또 한 번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세 번째 시집을 낼 수 있도록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차례
제1부 슬픔을 플어내다
1. 삶은 희망 입니다
2. 빚진 행복
3. 눈치
4. 양말 한 짝
5. 한계령
6. 슬픔을 풀어 내다
7. 매일 다른 아침
8. 가을 하늘
9. 초록빛 아침
10. 사랑은 위대하다
11. 불면의 파편
12. 이명
13. 행운
14. 옹이
15. 인생의 답
16. 벗꽃지는 길을 걸으며
17. 잘 살겠습니다
18. 나이의 흔적
19. 망설여 지다
20. 가슴 뜨거워 지는 날
21. 시의 시간
제 2부
22. 함께 저물며
23. 오늘
24. 슬픈 계절은 빨리 지나가기를
25. 시선
26. 진달래
27. 우리 사이
28. 사랑의 면역
29. 말하지 않기를 잘하였네
30. 위로
31. 때론 힘들어서
32. 어쩜
33. 이곳에 살고 있다
34. 내 마음 알겠지
35. 12월이 가고 있다
36. 대청마루의 추억
37. 기억을 낚는다
38. 아픔을 묻어 삭혔다가
39. 별하나 그려놓고
40. 배려하는 마음
41. 지금 내나이
42. 금지된 장난
제 3부
43. 도둑비
44. 묵상
45. 약속
46.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를
47. 행복한 아침
48. 그 길까지는
49. 우정
50. 세월에 맡기고
51. 다행이다
52. 꽃놀이나 갑시다
53. 민낯
54. 우리집
55. 아름다운 기억
56. 별
57. 나를 위하여
58. 진실의 시간
59. 응어리
60. 내 얼굴 보기
61. 그리움
62. 퍼즐을 맞추며
63. 나의 길에서
64. 부탁이다.
65. 예쁘기도 하다
66. 내안의 욕심
67. 약술
68. 사랑의 말
제 4부
69. 독서의 계절
70. 뿌리
71. 이제는
72. 침묵
73. 오늘
74. 사랑은 행복
75. 배경
76. 아버지의 빈 지갑
77. 인연
78. 딸의 위로
79 . 설마 밥 때문에
80. 날개옷
81. 이실직고
82. 푸른 오월 엄마에게
83. 인생의 자화상
84. 엄마와 딸
85. 가을밤
86. 길에서 옛사람을 만난다
87. 그때는 그랬습니다
88. 엄마의 등에 뜸을 놓으며
89. 관점의 차이
90. 밤비
91. 꽃가게 앞에서
92. 가을엔
93. 소녀
94. 청춘의 고뇌
95. 봄이 왔나봐요
1부
1 삶은 희망입니다
하늘 저 높은 곳에
흩어지는 구름을 바라보면
변화하면서 살아온
삶의 여러 모습이 보입니다
지나온 나의 길에도
이삿짐을 여러 번 싸고 풀었다는 사실에
대견함을 스스로 칭찬합니다
요동치는 삶 속에 생긴 것은
몸의 근육처럼 마음에도
인내와 끈기의 근육이 생겼습니다
바람에도 뽑히지 않는 풀뿌리가 되었습니다
거센 비바람 지나고 난 뒤에 보이는 파란 하늘
오늘도 삶은 희망입니다
2 빚진 행복
딸아이들 동네는 지금 벚꽃이 피고 있다는데
우리 집 앞 공원에 벚꽃은 떨어져
하얀 눈길을 만들고 있다
개화의 시기는 기온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데
개성이 다른 아이들의 성향을 알지 못하고 키웠다
아이들의 몫으로 행복을 챙겨주지 못하였고
아이들이 누려야 할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살았다
떨어지는 벚꽃 아래서 돌아본 생은 순간인데
한 번 밖에 없는 소중한 삶인데
빼앗아버린 아이들의 행복을 돌려주지 못하여
아직도 빚만 지고 살고 있네
3 눈치
함께 놀러 가자는 말이
겉치레로 하는 말인 줄 모르고
고맙게 생각하고 따라갔다가
여름날의 뙤약볕보다 더
따가운 눈총에
자존감이 시커멓게 탔다
그때는 믿음과 신뢰로 따라갔지만
이제는 실체를 알아버렸으니
돌다리도 디딤돌인지 조심하여야 한다
눈치가 없어서 입은 화상
자존감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4 양말 한 짝
지팡이가 분신이 되어 버린 엄마의 걸음
딸의 양말 한 짝을 들고는
아침 햇살에 비춰보며 털고 또 털고 하신다
빨래를 걷어 올 때 흘려 놓고 온 양말 한 짝
아흔을 바라보시는 엄마는
남은 한 짝과 짝을 맞추며 빙그레 웃으시네
영원히 놓지 못할 사랑
엄마의 사랑은 밥그릇의 밥이 고봉을 훨씬 넘어도
더 담아 주고 싶은 무한의 사랑
막 퍼주시는 엄마의 사랑을 오늘도 가득 먹고 있다
5한계점
무엇이 원인인지 알 수 없지만
당신의 시는
7부 능선에서 멈추어선 느낌이요
고산병 같은 멍한 머리를 감싸고
타인의 시선인 7부 능선이
한계점이 되어 자책하다가
같은 산을 따라서 오를 필요는 없잖아
수많은 산의 높이가 다르듯
모두의 능력이 같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최선을 다하였으면 그곳이 정상인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하산을 한다
6 슬픔을 풀어내다
오이 꼭지보다 쓴 슬픔은
시의 눈물로도 위로받지 못하고
담즙으로도 삭아지지 않아
차가운 것에도 화상을 입게 되네
머리카락에 다닥다닥 붙어서 기생하는 서캐같이
다 잡아 내지 않으면 탈피하여
온 머리를 괴롭히는 작아도 징글 한 이처럼
가슴에 틀어 박힌 슬픔들이 스멀댄다
얼음강을 건너온 봄꽃
봄꽃보다 붉은 울 엄마의 서러움
노을빛 내리는 저녁 강가에 서면 사라질까
어둠을 하얗게 풀어낼 달이 뜨면 잊어질까
손아귀의 힘 같은 한도 기력 떨어지면 풀어질까
부드러운 샛별의 눈으로 임이 부르시면
슬픔을 풀어 꽃길 만들어 놓고
하늘길 오르시는 모습 고이 보고 싶어요
7 매일 다른 오늘
오늘 해야 할 일을 가지고
새벽이 창을 두드립니다
나무를 키우기 위하여
물과 햇빛은 꼭 필요하다고
어제는 비가 오고
오늘은 햇살이 내립니다
어젯밤에 헤아리지 못했던 별을
오늘 밤에 만나게 되고
어제의 꽃봉오리가 오늘 향기로
날아다닙니다
매일 다른 오늘의 모습
오늘의 변신이 신기합니다
8 가을 하늘
본성에는 본연의 사랑이 깃들어
가슴과 심장에서는
시냇물처럼 맑은 음악이 흐르고
여름을 잘 견딘 과실이
가을 하늘아래 색색으로 잘 익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파란 가을 하늘에게
내 마음은
어떤 색으로 물들었는지를 물어본다
9 초록빛 아침
회색빛 장마가 끝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잎에
바람이 살짝 앉으면
곰팡이 핀 옷을 꺼내어 말린다
장막에 갇혀서 고립된 마음과
우울로 덧칠된 생각에도 햇살을 들인다
초록빛 아침에 눈은 맑아지고
생각은 향기로워지고
10 사랑은 위대하다
여름날 풀벌레는 밤낮으로 노래하고
들풀은 그 노래를 들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발길 멈춰지는 마음
사람의 본심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해그름 산책길에 왜가리 한 마리
물고기를 입에 물고
보금자리가 있는 산을 향하여 바삐 날아간다
부모의 책임에는 위대한 사랑이 있다
어둠이 찾아오니 가로등이 길을 밝혀 준다
11 불면의 파편
오후에 마신
진한 커피의 효과
지금은 새벽 2시
오만가지 잡념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듯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확대경 같은 눈으로 노려보는 사마귀같이
불면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첫닭이 울 새벽이 돼서야 탈출하였다
불면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패잔병으로 쓰러져 있다
12 이명
풀 먹인 광목 같은 와스스한 소리
이명의 소리
긴 세월 득음을 하였으면
세상으로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토굴에 홀로 있다
왁자한 세상의 소음에 트라우마가 생겨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인가
13 행운
지구의 나이 40억 년이 넘는다고 한다
하루도 같은 날 없었을 지구 앞에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 살았다
지구에서 살아온 나의 칠십 년은
지구의 나이로 계산하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의 시간
상상을 초월한 지구의 시간에서
살아본 것은 행운이지만
고통과 슬픔도 많이 보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수명만큼
자유롭게 살기를 허락한 지구
두 번의 여행은 올 수 없는 곳
떠날 때도 정리를 깨끗하게 하자
여행올 미래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과 희망을 위하여
지구의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14 옹이
상처는
치유되었다 하여도 흔적은 남는 것
겉으로 드러난 옹이
그 속은 많이 아팠다
보이지 않는 곳은 더 아프다
15 인생의 답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갔는데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위층에 사는 학생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언제 시험 치느냐고 물으니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친다고 한다
나는 시험이 없어서 좋다고 말하니까
학생이 그냥 웃어 준다
그 시절 번개 치기로 하였던 공부는
세월이 지우개가 되어 지워버렸고
겨우 전화번호와 주민번호만 외우며
깜박거리는 건망증으로 살아가고 있다
혼자가 아닌 같이 늙어가는 언니 오빠들의
인생시험지의 답들은 모두 똑같다
소설책을 몇 권 써야 된다고 말씀하시지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이 인생의 답이지
16 벚꽃 지는 길을 걸으며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떨어져
길을 하얗게 덮고 있으니
사월이 선걸음에 가는 것 같아서
아쉬움 남는다
자연의 이치를 보고 배움을 얻을 수는 있지만
가는 길 막을 수는 없으니 하늘의 섭리에 순종해야지
어느 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하늘길을
벚꽃잎처럼 어머니 홀로 떠나셨네
바람 한 번에 우수수 떨어지는 저 꽃잎의 생
숨겨둔 소망은 열매로 자라고 있을 테고
벚꽃이 지는 이 길에서 나를 태어나게 하신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생각한다
17 잘 살겠습니다
책상 앞에 앉은 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만 보시던
엄마의 심심하셨던 마음을
그때는 몰랐지만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나서야 알게 되네
정말 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때는 곁에서 걱정하셨지만
지금은 하늘에서 노심초사하시겠지
엄마의 정성과 사랑에 보답하며 살아야지
천상에서 만날 그날까지
18 나이의 흔적
나의 세월은 마음을 어루만져
얼굴에 주름을 만들었고
해와 달의 세월은 변함없이 눈부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어라
나무는 나이를 몸 안에 새기고
사람의 나이는 겉모습에 새겨지고
얼굴에 새겨진 훈장 같은 주름
계곡처럼 선명하여서 감사하다
19 망설여진다
변덕스러운 마음은
수시로 모양을 다르게 하기에
여기저기 삐뚤어진 항아리 될까 봐
가마에 불 지피기가 망설여진다
마음이 형상이 될 그릇
뜨거운 가마 안에서도 수행을 못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나올까 봐
가마에 불 지피기가 망설여진다
20 가슴 뜨거워지는 날
한 잔의 커피가 가슴을 뜨겁게 달구면
새벽 물안개 피어오르듯 추억 속에 얼굴들이
그리움으로 살아난다
기억 속 얼굴들이 환하게 보이면
하늘이 맑은 가을이 왔는 가 보다
철부지 그 시절 이야기는
말 많은 참새 때를 닮은 듯 시끄러웠고
그리움이 물결처럼 출렁이는 오늘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할까
저 산에 단풍 들면 가슴도 붉어지고
마음이 훤히 보인다는 저 세상에 가더라도
보고 싶다고 얼른 찾을 수 있을까
보고 싶다 하여 만날 수 있을까
21 시의 시간
어둠이 가고
새벽이 오는 시간이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바라보는 병아리처럼
시의 시간에 머물다 고개를 들었다
해가 높이 떴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고개를 들었는데
나이 앞에 하늘길이 보인다
시의 시간은 무릉도원이다
제2부
22 함께 저물
나이가 들수록
가을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속살까지 고운 색으로
물들어 있는 단풍
생의 끝이 눈부시다는 것은
얼마나 잘 살아온 삶일까
바람이 지나가고
햇살이 머물다 간 자리에
어깨를 맞댄 나뭇잎도 쉬고 있네
떠날 준비를 하는 가을이 아름답다
희생을 강요하는 사랑이 아닌
진실한 사랑이 필요하고
또는 누구를 위하여
헌신하는 사랑도 있듯이
사랑에도 여러 모양이 있는 듯하다
보냄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가을 속에
아직도 자라야 하는
내 삶의 여린 이파리들과 함께
고운 사랑빛으로 물들고 싶다
23 오늘
오늘 만나는 봄나비
내 생애 한 번뿐인 인연
오늘 만나는 저 꽃
내 생애 한 번뿐인 만남
오늘 만난 석양 그리고 노을도
내 생애 한 번 보는 빛깔
오늘 내 생에 빗장이 채워진다면
오늘과 기쁘게 헤어지리라
그동안 오늘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24 슬픈 계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높은 산 깊은 고요가
상수리 열매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
적막으로 깊어진다
너의 슬픔에 마음을 두면
내 그리움은 눈물로 깊어진다
별이 빛날수록 시선은 하늘을 향한다
어둠 속에 등불 하나 켜고
먼 길에 올 사랑하는 사람 기다린다
오는 길에 별빛과 달빛이
환하게 비춰주기를 기도한다
언젠가 버스에서 만난 아이
엄마와 아빠가 헤어져서 슬프다고
힘없이 말하는 그 아이가 많이 보고 싶다
엄마 보러 모레 서울 갈 것이라고
눈치를 보며 살짝 말하는 아이의
슬픈 계절이 빨리 지나가기를
25 시선
시선은 눈이 가는 방향이라고 사전은 말한다
눈이 간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공간에 머물러도 시선의 방향은 다르듯
시선은 같아도 생각은 각각 다르듯
너와 나의 시선은 풍경 속에 머물러도
생각은 다른 곳에 머물 수도 있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마음이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풍경 속에도 여러 길이 있기에
산 정상에서는 같은 시선 같은 마음으로 만나자
내려올 때 서로 추락하지 않도록
26 진달래
얼음강은 두꺼웠다
차가운 땅을 녹인 희망
손끝에 맺힌 붉은 동상
눈물 숨긴 사랑
분홍 꽃잎에 남아 있는
겨울의 흔적
그 길을 헤치며 너는 왔다
27 우리 사이
파란 하늘 흰구름 한 점이
네 마음처럼 순하게 보여서
고마운 너를 생각하고 있는데
정말 너에게서 전화가 온다
맑으면 맑을수록
훤히 잘 보이는 순수한 영혼처럼
우리의 텔레파시가 반짝거렸나 보다
잘 있었니
응,
더 이상 무얼 바랄까
우리 사이 여전히 투명하여
햇살이 눈부시게 잘 들고 있는데
28 사랑의 면역
좋은 것은 함께 나눌수록
기쁨과 행복이 배가 되지만
감정을 건드린 뾰족한 말은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
내가 가진 사랑의 면역보다
네가 가진 사랑의 면역보다
더 지독한 시기와 질투의 바이러스가
우리 사이에 침범하였을 때
믿음과 신뢰의 면역은 얼마나 될까
우리 사이에 비상등이 켜지면
멀어질까 가까워 질까
어느 곳에서도 변하지 않을
참사랑의 면역은 얼마나 될까
29 말하지 않기를 잘하였네
차리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좋았겠어
슬픔에게 고통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밤하늘에 별 반짝이지만
그 별빛 내게 닿지 않아서
부엉이 우는 산속처럼 외로웠네
사랑 같지 않은 껍데기는 떠나가라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순간순간
깨물어 터트리지 않고 참았던 말
말하지 않기를 잘하였네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기에
행복도 사랑도 기쁨도 알게 되었네
30 위로
위로가 전하는 말
혀바늘처럼 입안에서 아프다
씹으면 씹을수록 건들려서 아프지만
딴엔 위로인 것을 어쩌랴 받아야지
그 마음을 뱉어낼 수없어 웃음이 쓰다
위로에 건들려 아픈 마음을
쓸개즙 같은 침을 섞어서 삭여 본다
내 안에 있는 동병상련의 친구
그가 말없이 답답한 가슴을 쓸어 준다
31 때론 힘들어서
머물지 못하고
시간 따라가야 하는 하루
그 길에 이유란 없어
힘들어도 걸어갈 수밖에
만남이 운명이라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숙명
주어진 오늘
이 길에서 어슬렁 걷는다
누구에게 투정 부리고 싶은데
돌멩이 하나 걷어찬다
때론 힘들어서
걸어가는 하루가 멀게도 느껴진다
32 어쩜
어쩜
변하지 않고 그대로네요
듣기 좋은 말 하는 그대도
어쩜 변함없이 그대로네요
젊음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하던
그때 그곳에 머물러 서서
바라보기 때문일까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졸음을 쫓아내며
동고동락하던 사람들
어쩜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네요
33 이곳에 살고 있다
귀뚜라미 소리 맑게 들리는 가을밤
달빛은 마루에 앉아 잠시 쉬고
댓잎을 흔들어 소리를 가져오는 바람
가을밤 국화꽃 향기는 짙어지고
아이들의 호기심은 개구쟁이 되고
하얀 박이 담장에 걸터앉아 익어가는 곳
귀뚜라미 소리 들리지 않고
달빛도 별빛도 네온사인에 가려 희미하고
바람은 높은 벽에 부딪쳐 휘어지고
아파트 벽에 박넝쿨 오르지 못하고
골목길에 노는 아이들 소리 들리지 않고
어린 날 추억을 그리워하며 이곳에 살고 있다
34 내 마음 알겠지
하늘은 높아지고
산은 붉어지고
달빛도 눈이 부신 밤이라서
그래서 보고 싶다
초대도 안 했는데 찾아온 나이
여기저기 만들어진 주름
삐뚤어지고 굵어진 손마디
숨기려 하여도 절룩거려지는 걸음
나 지금 이런 모습이다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보고 싶다
추신
가을바람에 붉게 물든 나뭇잎 한 장 넣어 보낸다
내 마음 알겠지
35 12월이 가고 있다
오후에 길어진 우리의 그림자
다정하게 따라오고
이심전심이 아니면 어때
해그름이 내리는 종착역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도 행복이지
묵은 껍질을 벗으며
나이테를 새기는 나무처럼
한 해가 가면 자동으로 먹는 나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나이를 먹을 수 있음도 감사하다
12월이 가고 있다
36 대청마루의 추억
욕심을 비우신 엄마의 해맑은 얼굴을 뵈면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여섯 명의 손주들 걱정도 모자라서
여섯 명의 증손주 걱정까지 해 주시는 감사한 엄마
오늘은 그 옛날 학교 다니던 이야기를 하신다
윗동네에는 다섯 명 아랫동네는 두 명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윗동네 아랫동네가 된 시골마을의 풍경
윗동네로 가면 조금 빠르게 학교를 갈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텃세에 엄마는 홀로 못을 지나
여우가 내려다보는 산길을 따라 무서움을 무릅쓰고
외롭게 학교를 다니셨다고 한다
그리고 한 명의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 남자애와는 한 번도 같이 다녀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학교를 오는지 궁금하였다던 말씀도 빼놓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서로 뭉쳐야 할 그 시절에
아이들은 아이 들었는가 보다 하나의 동네를 두 개로 가르고 있었으니
남과 북의 선이 생길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등하굣길에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무심하였던 그 남자애가
청년이 되어서 집으로 찾아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돌아갔단다 두 번이나 그랬다고 한다
엄마는 그 의미를 그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엄마를 마음에 두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때 솔직하게 좋아한다고 말하였으면 지한테 시집갔을 텐데 하신다
엄마의 한 많은 세월에 대청마루의 추억이 더욱 그리울 것 같다
맞아요 그때 그 청년도 엄마도 너무 순진하셔서
때를 놓쳐버린 것이지요 인연이 되지 않았던 거지요
이렇게 위로를 해드린다
놓쳐버린 것은 아쉬움이 되고 잡지 못한 것은 후회가 되고
물거품이 된 미묘한 감정이 대청마루의 추억으로 살아난다
37 기억을 낚는다
엊그저께 만난 그 사람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퍼뜩 생각나지 않네
그 옛날 까까머리 그 아이는 얼굴도 생각나고
이름 석자도 생각나는데
걱정이 덜컥되네 건망증 혹시 치매
치매가 오면 옛날의 추억은 기억나고
지금 일은 흐려진다는데
현재의 미끼를 단단히 끼워서
가물거리는 기억을 낚아야겠다
38 아픔은 묻어 삭혔다가
뾰족한 아픔은 가슴에 묻지 말고
세월에 묻어 삭혔다가
선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울 때
밑거름으로 사용하여야겠다
씨앗은 여물어 봄날 꽃으로 피고
꽃은 피어서 씨앗이 되는
돌고 도는 자연의 순리를 보면서
나도 본연의 나로 잘 익어서
내 영혼의 뜰에
하얀 꽃으로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39 별 하나 그려놓고
별 하나 그려놓고
또 별 하나를 그렸습니다
서로의 길을 비추어 주며
나란히 걸어갑니다
마주 보는 얼굴은 정답고
마주 잡은 손은 따뜻합니다
40 사랑과 배려
나무 그늘이 드문 산책길에서
의자가 있기에 쉬었다 가자고 하니까
햇볕이라고 그늘이 있는 의자에 가서 쉬자고 한다
그늘을 찾는 남편을 따라 걸어며
저려오는 다리의 아픔을 참는다
당신의 사랑과 배려를 나의 고통이 불만한다
상대의 마음을 자기식으로 바라보는 배려와 사랑
현실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네
그래서 서로 화를 내게 되는 이유인가
서로 다른 배려와 사랑 때문에 다투게 되는 것인가
41 지금 내 나이
비 오는 저녁 전기장판을 따뜻하게 하고
저려오는 다리의 아픔을 만지는 나이
초저녁 잠은 많아지고 새벽잠이 적어
커피 한 잔 타먹기도 조심스러워
아이들 집에 가기가 부담스러워지는 나이
건망증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기억에
잊고 있었던 추억 생각나면
웬 종일 붙잡고 그리워하는 나이
몸이 무거워지니 게으름도 생기는
제 자리걸음으로 사는 것 같은 지금 내 나이
42 금지된 장난
어린 날 어머니는 그러셨지요
불장난을 하면 밤에 오줌 싼다고
전기불이 없던 시절
성냥은 누구나 손 닫기가 쉬워
어머니의 지혜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렇게 가르쳐 주셨지요
불장난의 무서움을 모르던 그때는
채를 쓰고 소금 얻으러 가는 것이
창피하여 불장난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았습니다
금지된 불장난에 집이 다 타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무섭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깨닫게 됩니다
제3부
43 도둑비
아침 일찍 휴대폰으로 안부를 묻는 손주들
할머니 동네에는
밤에만 비가 왔다고 하니까
손주들의 합창
도둑비가 왔네요 한다
도둑비가 지나간 깨끗한 하늘에는
손주들의 눈망울처럼
푸르름 속에 햇살이 반짝거린다
처음 들었던 말에 아이들은 신기한 듯
태권도에서 배웠다고 자랑이다
사랑스러운 손주들도 할머니 꿈속에
도둑비처럼 왔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밤 꿈의 문을 활짝 열고 손주들을 기다려 볼까
44 묵상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들
마음까지야 가려질 수 있을까요
해가 부시다고 눈을 감고 걷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길을 잃고 헤매면
양심 또한 고달 플 것이란 것을 알기에
마음을 곱고 아름답게 가꾸려 하겠지요
어김없이 주시는 오늘의 빛나는 침묵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45 약속
우리는 현재
서로 다른 곳을 여행 중이라
나는 지금
가을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드는 길을 걷는다
내 삶을 바라보듯
벌레들의 발자국 찍힌
나뭇잎 엽서를 너에게 보낸다
친구야 누구가 되던
먼저 여행 끝나게 되면
노을빛 강가에
마중 나오기로 약속하자
46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를
별처럼 빛나는 추억을
많이 간직하려무나 아이야
파릇파릇 돋아나서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추억을
너희의 가슴에는
맑은 샘물이 솟아나야 하고
색 고운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맑고 튼튼하게 자라야 한다
가난한 밥상이라 하여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마음은 더 따뜻하여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단다
어른이 되고
한가한 시간이 있을 때
새소리가 맑고
꽃 향기가 창으로 들어올 때
향기로운 차 한잔을 식탁에 놓고
햇살을 지그시 바라보며
보석 같은 추억을 꺼내어 보렴
아 얼마나 행복할까
때론 슬프고 고달플 때
한고비 산을 넘는다고 생각하면
삶은 더욱 성숙되리라
어디서든 겸손하고 감사한다면
시비는 물러가고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리라
먼 훗날을 위하여
영롱한 추억 많이 간직하기를 바랄게
사랑한다 얘들아
47 행복한 아침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너무 오래가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이 가야 낫는다고 하나 봅니다
섣불리 치료하여 줄 수 없을 때는
말없이 손만 잡아 드려도 될까요
작은 새들이 물어와 전하는 소식을 듣다가
전해줄 이야기가 없는지 오지 않을 때는
그럴 때는 궁금하여 기다려집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정이 들어 가나 봅니다
가끔이라도 보면서 살던 이웃이
보이지 않을 때 묻게 되는 안부
잘 있다고 전해주는 소식에 안심이 되는 기쁨
마주 보면서 정다운 이웃이 되나 봅니다
48 그 길까지는
오늘도 그 길을 가고 있겠지
살아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신비한 빛과 어둠의 그 길
진실로 이실직고하는데
반딧불이 같은 작은 빛 하나도
준비하지 못하였기에
늦게서야 걱정이 되네
이슬과 풀만 먹어 풀향기 나는 네가
적막의 길에서 노래 불러 준다면
빛과 어둠의 갈림길까지는
외롭지 않게 갈 수 있으리
49 우정
말없이 떠나간 친구야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은
정다웠던 우리의 시간에
하얀 꽃잎 같은 우정을
희망으로 걸어두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생의 길에서
우연이든 필연이든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반가움도 서먹거림도 없이
매일 보아온 듯 그렇게 만났으면 좋겠다
하얀 꽃이 바람에 흔들려도
조용하기만 하였던 우리의 오월
멈춤 같은 고요 속을 걸으며
정적의 무게가 이별의 예고였구나
나는 네가 내 곁을 떠났다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고
너 또한 내가 네 곁을 떠났다
그렇게 냉정히 말하지 않기를
친구야
우리에게 헤어짐은 이별이 아니라
언젠간 다시 만날 아름다운 약속
하얀 꽃 같은 순수한 그리움을
우정의 목걸이로 만들어
추억의 벽에 곱게 걸어두자
50 세월에 맡기고
복잡하여 풀기 싫은 문제들을
세월에게 맡기고
책임을 회피하였다
살짝 건들기만 하여도
펄펄 날리는 먼지 같은 자존심에
찰흙 같은 수행을 시킬 수 있을까
세월에 맡겨두고서
아직껏 풀지 못한 삶의 숙제
유통기간이 지나간 숙제를
이제 푼다고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강산이 몇십 년이나 변하여
묻혀둔 숙제는 그대로 두고
오늘 할 일이나 제대로 하며 살자
51 다행이다
햇살 앉은 초록 잎에
추억이 날아와 반짝거려도
개구쟁이 시절의 생각들
나만 꺼내어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계곡처럼 흘러내린 주름에
저녁노을의 축복도 있네
선명하게 돋아난 검버섯을
생의 훈장으로 받아 안아도
감사하고 행복하기만 하네
강물은 깊으면 깊을수록 조용하고
침묵에는 믿음과 신뢰가 있고
바람 따라 모양을 만드는 물결처럼
사람의 성향도 밖으로 드러나네
앞에서는 볼 수 없는 나의 뒷모습
거울 두 개로 비춰 보면서
마음까지 비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52 꽃놀이나 갑시다
벚꽃이 바람에 살랑 거리며
활짝 웃고 있다
남편이 농담이라고 하는 말을
진담으로 알아듣고 삐지니까
"아이고 농담도 못하겠네" 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지만
취중이 아니라서 알쏭달쏭하고
검은 머리가 반백이 넘게 함께 살아도
소통에 빨간불은 여전히 켜지고
우리 밖으로 꽃놀이나 갑시다
봄꽃이 소통의 파란불을 켜주네
53 민낯
산속에 나무도
갑작스러운 돌풍에
허리가 부러질 듯 휘청이고
뿌리도 뽑힌다
각본 없는 돌발 질문에
준비되지 않은 실력이 드러나서
진짜 모습이 들켰네
민낯을 보여 주고 말았네
54 우리 집
싸리 대문 옆에 감나무
감나무 옆에 작은 우물
돌담
뜰에 백합꽃 모란꽃은
어린 가슴에 사랑스러운 희망
어미 닭 품속에 잠들은 병아리
툇마루에서 놀던 햇살이 떠나고
김이나는 따뜻한 밥이 두레상에 차려지고
하얀 머릿수건을 쓴 외숙모도
꽃처럼 예뻐 보인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외갓집
무심코 하였던 우리 집이란 말에
이게 어찌 너의 집이냐는 외사촌의 핀잔에
슬프고 부끄러운 어린 자존감
나를 잊은 것 같은 엄마 멀리 계시고
갈 곳 없는 더부살이가
파란 하늘에 낮달처럼 외로웠다
창문 밖 초록산이 평화롭게 보이는
너무나 편안하고 아늑한 우리 집에서
갈 곳 없어 더부살이한 유년의 수첩을 꺼내 본다
55 아름다운 기억
어릴 적 모습은
빛바랜 사진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고
맑고 순수한 마음은
어디에 가져다 놓아도
보석처럼 반짝인다
구름도 바람에 흩어지듯
세월에 사라질 기억들 모두
아름다웠다고 말해야겠다
56 별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은
사막의 밤하늘에서 보았던 그때의 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는데
어린 날 고향의 밤하늘에서 보았던
그 별만큼이나 아름답고 영롱하게 빛났을까
별빛 같은 꿈을 안고 도시로 간 동무들은
별빛 같은 소원을 이루었을까
도시의 불빛 아래서 하늘을 보고 있다
그 옛날 빛나던 별을 찾고 있다
57 나를 위하여
믿었던 일들이 수포가 되었을 때
극복해야 하는 힘은 몇 곱절로 필요해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마지막 힘은 불씨로 남겨 두었어야 하는데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마침 바람이 불어서인지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 것인지
운명인지 우연인지를 생각하게 하네
저녁 강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감싸도 춥다
믿음과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
가슴에 고드름이 생겨도 녹여야 한다
내가 얼지 않기 위하여
58 진실의 시간
사랑한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은 것 아니고
공부의 속도가 빠르고 느리다고
본 나이에 더하기 빼기의
이상이 생기는 것 아니듯
이승의 옷을 벗고
영혼의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가
그때가 본모습이 되겠지
나에게도
진실의 시간이 가까이 다가온다
59 응어리
모래 위에 발자국은
파도와 바람이 지워 주지만
가슴에 있는 남아 있는 응어리
풀어줄 자 없어
밀가루 반죽하듯 치대다 보면
부드럽게 풀어질까
60 내 얼굴 보기
자신을 일흔다섯 살이라 소개하며
나에게는 팔십 살이 되었느냐고
이미 자신의 눈으로 정해버린 나이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몇 살 되어 보이느냐고 묻길래
예순 살 밖에 안되어 보인다고 말하자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환해졌다
얼굴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
칠십 살을 훌쩍 뛰어넘어
팔십 살이 되었느냐고 묻는 말에도
씁쓸한 마음 티 내지 않는 내공도 생겼다
거친 풍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얼굴
얼굴로 나이를 추측하여 올렸다 내렸다 하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무덤덤해졌다
내가 내 얼굴 잊어버리지 않게
한 번씩 거울이나 봐 두어야겠다
61 그리움
아침에 피었다가
반나절만에 지는 나팔꽃처럼
그리움도 때론 그랬으면 좋겠다
62 퍼즐을 맞추며
몇 개 안 되는 퍼즐로
아이큐는 시험대 위에서 박살 나고
끈기와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이쪽을 겨우 맞추고 나면
저쪽이 틀어지고
저쪽을 힘들게 맞추면 이쪽이
여러 사람의 마음 맞추기는
퍼줄보다 훨씬 더 어렵겠지
63 나의 길에서
출렁다리 중간에 왔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중심 잡기가 힘들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게 될 것 같다
예측하기 어려운 삶의 길에서
그래도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오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왔는가 보다
64 부탁이다
이리저리 깨물어
속속들이 단물 다 빨아먹고
아무 곳에나 퇴하고 뱉어 버리면
누구의 신발에 달라붙어
피해를 주고 욕을 먹게 되지
단물 빠진 비애
의미 없이 버릴지라도 추하지 않게 버려줘
구걸하듯 아무에게나 달라붙지 않게
그리고 깨물린 선명한 이빨 자국
보이지 않게 종이에 잘 싸서 버려줘
부탁이다
65 예쁘기도 하다
삐뚤어진 글씨 바르게 쓰기 위하여
지우개로 지우고
종이까지 찢었던 어린 날의 마음이
예쁘기도 하다
바르게 살기를 소망하며
잘못을 반성으로 바로 잡던 어린 결심
지금 바라보니 예쁘기도 하다
그때가 참 예뻤다
66 내 안에 욕심
액세서리 파는 가게에서
색과 모양이 곱고 예쁜 팔지들을 손목에 끼워보았다
주인의 설명은 이것은 건강에 좋고
저것은 행운을 가져오고
코끼리의 상아는 부자가 되게 하여 준단다
의심스러워하는 나의 표정을 언제 보았는지
인도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까무잡잡한 얼굴의 아저씨는 자신의 믿음을 거듭 부탁하였고
진짜 코끼리의 상아란 말에 마음이 이성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의 욕심의 굴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코끼리 그림이 새겨진 얇은 팔찌 하나로
소박한 부자의 꿈을 꾸어 보는 기쁨은
욕심이 아니겠지로 위로하였다
코를 높이 올리고 있는 코끼리 그림의 팔찌는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조차 없고
순간 부자라는 말에 혹하여진 진실된 본마음만 남아있다
그때 코끼리 상아 팔찌를 샀으면 지금 부자가 되었을까
67 약술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이제는 아픈 데가 한두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 나타난다는 말을 하면서
무릎이 아프다는 나에게 처방을 해준다
포도주에 양파를 삼사일 재어
우려서 먹고 난 뒤에
낫은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하라고 한다
첫날은 약으로 먹고
어제는 깜박하여 먹지 않고
지금은 생각나서 먹고
약은 정성으로 먹어야 하는데
생각날 때 기분으로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지리산 천왕봉에 다시 오를 수 있기를 꿈꾸며
68 사랑의 말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아기의 입에서 나오는 예쁜 옹알이는
꽃처럼 향기롭다
봄날의 꽃 봉오리처럼
부드러운 웃음이
마음을 살살 간질면
세상에서 제일 큰 사랑의 꽃이
내 마음에도 핀다
동그란 입에서 하는 옹알이는
모두 천국의 이야기뿐이라
잘 알아듣지를 못하여 미안하고
손짓발짓 표정을 바라보며
네 말이 다 맞다고 맞장구치고 있네
제4부
69 독서의 계절
열린 창으로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들어온다
밖을 보니
뜰에 하얀 야생화가 참으로 곱고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 떠가니
마음이 산란될까 봐 창을 닫아도
가을이 먼저 들어와 손을 잡는다
책을 덮고 밖으로 나온다
70 뿌리
척박한 땅에 나무의 뿌리는
힘줄처럼 구불거리며 뻗어 나가 있다
물을 찾아 뻗어나간 나무의 뿌리처럼
가난이 자식에게 아픔이 되지 않기 위하여
부모의 삶에도 뿌리 같은 힘겨운 시간들
말 못 할 아픔이 얼마나 많았을까
드러나지 않은 뿌리의 힘은 강하다
71 이제는
다음에 또 오자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구름과 비가 백두산을 전부 덮었기에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 말이다
한 치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이
완벽하게 장막을 쳤다
오후에 간 사람들은 백두산 천지까지 보았다는 말에
정말 정성이 부족하여서인가 자신을 뒤돌아 보고
영산이 모습을 보여 주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음에는 남편과 함께 오자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였지만
어언 십 년이 흘렀다
보수조차 어려운 것들의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련 없이 포기를 한다
다음에 또 오자 이 말 조용히 접어 서랍에 넣는다
72 침묵
무한의 큰 그릇에
사람들의 사연을 가득 담고 있어도
침묵은 약속의 법을 지켜 말이 없네
자연의 흔적은 수많은 세월
먼지가 되어서라도 남아 있지만
들은 말을 삼켜버리고
밖으로 내보낼 줄 모르는 침묵
말이 너무 많은 세상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고
입을 열게 부추기는 사람들
처음부터 지금까지
침묵은 들어도 침묵의 길을 가고 있기에
침묵과 침묵은 만나도 싸움을 하지 않네
73 오늘
오늘이 숙명처럼 와 있다
어찌 나만이 받은 선물이고 축복이겠는가
모두가 공평하게 받은 선물
생명의 빛이다
평등하게 주어진 하루지만
삶의 발걸음은 다르고 어깨의 짐도 다르기에
방향도 다르다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삶
야생마로 키우지 않아야 하기에 고삐를 단단히 잡고
오늘 이 길을 성실하게 가야겠다
74 사랑은 행복
시장할 때 먹는 밥은
냉장고 가장자리에서 맴돌던 반찬 하나로도
한 공기가 아니라 두 공기도 먹을 수 있지만
부른 배는 자꾸만 반찬 투정을 한다
명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추위에 언 몸을 녹이는 따뜻한 국물이고
보릿고개에 만나는 하얀 쌀밥이다
정성을 다하여도
엄마표 김치는 맛없다 하는 아들과
할머니표 열무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양손으로 엄지 척하는 손주들
시장할 때 먹는 꿀맛 같은 한 끼보다
더 맛있는 행복과 사랑을 안겨준다
75 배경
맑고 파란 하늘을
삶의 배경으로 들여놓고 싶다면
하루의 일터를 찾아 높이 나는 새처럼
욕심 없이 부지런하여야겠다
바람의 말을 들으려면
사그락거리는 갈대에게 귀를 가져가고
별들의 눈망울을 보려면
캄캄한 밤을 기다려야 한다
하늘이 푸른 날
자유와 평화가 하얀 두루마기 입고
온 세상을 아름답게 통일시키는 기쁜 날
그날이 우리의 배경이 되기를 소망한다
76 아버지의 빈 지갑
아버지는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을
매일매일 다 주고 계시지요
아버지의 지갑 속에
얼마 되지 않는 쌈짓돈까지도 다 나눠 주십니다
이것이 당신의 사랑법이란 것을 압니다
아버지의 사랑법은 위하여 사는 것이라
실천으로 가르쳐 주시지만
당신을 위하여 제 가진 것을 다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서는
부모가 되어보아야 알 수 있다는 말은 알겠지만
그러나 당신이 주신 사랑에 보답을 다한다는 것
자식으로서 쉽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77 인연
갑자기 소나기가 퍼 붙는다
현관 앞에 서 있는 나의 어깨에 잠자리가 앉는다
함께 비를 피한다
조금이라도 더 머물게 하고 싶은 욕심
호흡을 낮추며 긴장을 한다
그리고 잠깐 잠자리는 날아갔다
몇십 년의 시간을 사는 나와
한 두 계절을 사는 잠자리
지상에서 머무는 시간을 계산한다면
잠자리는 꽤나 긴 시간을
나의 어깨에서 머무른 것이다
옷깃을 스치는 한 번의 인연도
저승에서는 긴 시간의 만남이라는데
어깨에 앉은 인연은 얼마나 깊은 인연일까
잠자리와의 인연으로
지구와 나의 인연까지 생각하게 한다
78 딸의 위로
아빠가 동영상을 보내 주셨네요
무슨 동영상
엄마 시 낭송하는 동영상
그러면서 하는 말
하나님은 참 공평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음치잖아요
그런데 시 낭송은 노래보다 잘하시잖아요
목소리가 좋아서 노래도 잘하실 것 같은데
노래는 못 하잖아요
나이보다 한참 늙어 보이는 얼굴 보면 놀라고
조용조용 말하라는 남편의 충고에도
고쳐지지 않는 큰 목소리에 또 놀라고
수화기 속 목소리에 더 많이 속는다고 말하며
시낭송할 목소리를 주셨음에 감사한 마음
딸의 위로에 자신감이 생겼는가 보다
79 설마 밥 때문에
당신하고 나하고 며칠 사이로
저 세상 갔으면 좋겠다고 남편이 말한다
당신 혼자 두면 걱정이 된다면서
당신이 나보다 4 살이나 더 먹었으면서
며칠 사이는 내가 손해인 것 같아
4년 더 살다가 갈게요 하니까
남편이 참 그렇네 하고는 심드렁한 표정
설마 밥 때문에
저 세상 가서도 밥이나 빨래가 걱정된다는 말을
에둘러하는 말은 아니겠지요
80 날개 옷
엄마는 하얀 손으로
수의를 쓰다듬고 계신다
틈틈이 지어 놓으신
하늘 집이 그리운 것일까
수의를 만들어 놓은지가 어언 20년
옥양목에 물든 엄마의 마음
선녀들의 날개옷처럼
하늘가실 때 입을 옷이다
상자 속에서 지내온 오랜 침묵
고이 접어진 선은 날이 선명하고
머잖은 이별이 상자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엄마는
요즘 나오는 가벼운 신식 날개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날아가셨다
81 이실직고
감기가 들어서 마스크를 하고
지란 같은 친구를 만났다
남편의 감기가 나아가니까
내가 시작한다고 하니까
남편과 뽀뽀를 하여서 그렇다고 한다
지란 같은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실직고하고 있다
82 푸른 오월 엄마에게
황혼을 안고 뒤돌아 본 세월
새벽은 여명의 순간처럼 짧았고
노을은 어둠을 빨리 데려오죠
엄마하고 부르면 뜨거운 눈물이
풀잎에 이슬처럼 가슴에 맺힙니다
육신의 늙음은 고목의 옹이처럼 생겨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찬바람으로 들어와
마디마디 시리게 하지요
뻐꾸기 소리 들리면 엄마의 마음도 아려오는지
불효하는 딸에게
너 하나라도 없었으면 내가 어찌 되었겠니 하시며
외로움을 달래시지요
푸르른 오월입니다
엄마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한 해를 잘 넘겨주시어 감사합니다
내년 어버이날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엄마는
또 다른 시간의 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83 인생의 자화상
같은 모양과 크기의 그릇이지만
그 속에 내용물은 다르듯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 들어 있을 수 있고
쇠덩이처럼 무거운 것이 들어 있을 수 있지요
비슷한 듯 다른 삶으로 살아갑니다
삶이 인생의 자화상이 되기에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늦게서야 깨닫게 됩니다
석양이 강물에 내려와도 빛은 빛으로 눈부시지만
마음의 모양과 색은 매일이 다릅니다
훗날 실제의 모습에 만족하기 위하여
지금부터라도 자화상을 잘 그려야겠습니다
84 엄마와 딸
엄마는 바느질거리가 생기면 좋아라
재봉틀을 꺼내시며 즐거워하시고
나는 하늘이 파랗게 맑으면
계절에 상관없이 밖으로 나갔다
엄마와 딸 이렇게 다른데도
어느 날 딸의 한마디
엄마도 할머니를 닮아가고 있다고 한다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여도
엄마와 딸은 닮아 가는가 보다
지금 엄마는 하늘에 계시지만
살아생전 외로움이 많으셨던 엄마처럼
나도 이제는
텔레비전을 자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85 가을밤
풀벌레의 노래가 애처로우면
별들은 눈물을 땅으로 쏟아 붙고
그리운 사람 문득 생각나면
나는 창을 열어 나뭇잎소리를 들인다
사색이 한 잎 낙엽으로 찾아오면
고독과 베개를 같이 베고
긴 밤 뒤척임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맑아지고 싶고 깊어지고 싶은 마음
끈적하게 고여있는 내 안에 외로움
가을밤 은하의 샘물로 씻어내고 싶어라
86 길에서 옛사람을 만난다
수많은 사람의 족적이 굳어진 길에서
댓잎을 스치는 칼바람소리가 정신을 깨운다
앞서간 사람들의 올바른 걸음을 만난다
목적지를 향하여 나는 잘 가고 있는가
뒤따라올 누군가를 위하여
이정표를 바르게 세우며 가고 있는가
삶으로 다져진 인생길
먼저 걸어간 족적의 안내를 받는다
옛사람의 향기를 길에서 만난다
87 그때는 그랬습니다
졸업식날 엄마가 오셨어 너무 좋아
마음에서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어요
어느 학생의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홀로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가
졸업식에 못 오실 것이라 믿었는데
엄마가 오셔서 너무 좋아서
마음에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는 그 학생의 말
너무 좋아서 흐르는 눈물을 생각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직장 생활하면서 조퇴나 외출하는 게 미안하여
외할머니가 아이들의 졸업식에 대신 참석을 하셨고
나와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지 못하고 놓쳐버린
그 순간의 행복을 생각하니 이 가을이 슬퍼집니다
산다는 것이 그때는 그랬습니다
88 엄마의 등에 뜸을 놓으며
엄마의 등에 뜸을 놓는다
계곡을 타고 내려와 흐르는 강물이
세월을 말해 주듯이
굽은 엄마의 등에서 지나온 삶을 본다
엄마의 등에 뜸을 놓으면서
모성의 젖줄은 지금도 사랑으로 흐르는데
엄마의 등에 업혀서 바라보던 한 밤중에 별
그 별들이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든지
그날 이후로 그 별은 어디로 숨어 버렸나 보다
연약한 살갗에 자국이 남는다
연기가 사라진 자리에 살아나는 붉은 반점
아이고 시원해라 아이고 시원해라
어찌 뜨거움이 시원함이 되는지
굽은 엄마의 등을 손으로 만져본다
그때 업혀서 별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엄마의 등은 굽지 않았을까
엄마가 싫어하실 자책을 몰래 해 본다
어릴 적 엄마의 등에 많이 업혔다
무심한 시간이 얼굴을 내민다
그날 밤 숨어버린 별들이 가슴에서 쏟아져 나온다
한스런 엄마의 굽은 등에서
내 동심의 별들이 일제히 빛난다
무심한 세월 따라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89 관점의 차이
이 배경을 넣어서 사진 찍어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못생겼는데요
아가씨는 아름다운 배경을 말하고
나는 배경보다 주름진 얼굴을 생각하고
아가씨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고
사진에 새겨질 주름이 갑자기 생각나
고마운 호의를 사양하고 나서
참으로 민망한 실수를 하였다고 후회하였다
젊음은 실망의 표정을 지으며 자리 떠났고
수습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무안함
앞으론 젊은이가 도와주겠다면
아이고 고마워요 하면서 얼른 받아야겠다
90 밤비
밤비가 다녀 갔다
유리창에 동그라미 그려 놓고 갔다
찾아왔으면
똑똑똑 두드려 보기라도 할 것이지
암호문 같은 편지만 잔뜩 써 놓고 갔다
91 꽃가게 앞에서
시장 안 꽃가게 앞에서는
여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봄나비가 된 마음으로 서성인다
감추고 있으면 나답지 않아서
마음을 밖으로 보내 놓으니
내 발걸음도 꽃집 앞에서 멈추네
분홍의 장미는
아직 움츠려 있는 것을 보니
사랑 고백을 못하였나 봐
노란 나리의 당당한 어깨가
멋스럽게 보이고
달리아의 빨간 열정으로 보아
사랑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여러 꽃에 마음 설레는 것을 보니
내 안에 바람기가 많은 것을
오늘 꽃가게에서 알았다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아름답다 예쁘다 곱다 말하며
기대로 얼굴 붉히게 하고서는
그냥 돌아서 오네
누구를 데려 올까 망설이다
차라리 모두를 두고 오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돌아서 오네
다음에는 묵묵한
다육식물을 데리고 와야겠다
내 마음에 바람기를 잠재우려면
92 가을엔
가을엔 가을을 닮은 사람들과
국화차 한 잔 놓고
무심으로 흘러보내도 괜찮을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도
웃음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너무 맑아서 바닥이 훤히 보이는
물 같은 사람들과 함께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들을 보살피는 온화한 바람같이
사색의 주름이 부드러운 사람들과 함께
황혼의 강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을이 강물에 안기어 고요히 잠들듯
까닭도 이유도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기도를 허락하여 주시고 받아 주소서
93 소녀
바람은 향기로운 길동무되고
들꽃은 재잘재잘 말동무되네
파란 하늘에 낮 달은 하얀 그리움
소녀의 설레는 예쁜 마음이어라
맑고 순수한 생각은
아기의 배속질 같이 고아라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고
자연의 색 봉숭아 꽃물 이어라
94 청춘의 고뇌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아
마음 편히 초록의 숲을 바라보는데
옆에서 하는 이야기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친구가 바라던 직장에 취직이 되었다고
자기의 일처럼 신나게 얘기를 하는데
옆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깊은 한숨을 쉰다
청춘은 저 산보다 힘차고 푸르다
산이 저만큼 푸르기 위하여
해마다 계절의 고비를 넘어왔듯이
청춘도 임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고 있을까
청춘의 고뇌가 찬란한 희망으로 피어나기를......
95 봄이 왔나 봐요
모처럼 다니러 온 딸이 한마디 하네요
엄마 화장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라고
봄 꽃이 화사하니까
덩달아 꽃이 되고 싶은 것인가
동동 구루무만 발라도
피부가 동동 구루무 빛깔이셨던 엄마가
어느 날 늘어난 주름을 보며
하염없는 말씀을 하셨을 그때가 내 곁에 왔네요
아직은 여자
아니 죽을 때까지 여자
아니 아니 죽어서도 여자이겠죠
봄이 왔나 봐요
한 번 웃음에 드러날 진실한 주름을 감추려
화장을 짙게 하고 있네요
봄은 이런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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