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 시집문고

재회

청산 /임흥윤 2024. 5. 1. 09:06




재회
      오신탁

  하루 일과가 끝나면 가로등이 없는 시골은 어둠 속에 묻힌다.  발길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보건진료소다.  우리 마을에 진료소장으로 오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여느 날처럼 별빛이 안내하는 길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담장너머 초등학교 후문을 통해 인적이 드문 벤치에 앉아 하루 일과를 놓고 수다를 떤다.
추울 때는 진료소 로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소장의 나지막한 음악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젊음의 시간을 보낸다.
사랑이 아닌 선후배의 관계 속에서 음악과 종교의 관심사로 많은 것들을 서로 채워 주었다.
감자를 캐면 감자를, 옥수수를 수확할 때면 옥수수를 가져다주며 홀로 자취생활 하는 소장의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많은 시간들을 함께하다 보니 서로 간에 애틋한 감정이 솟아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장의 친오빠는 고등학교 선배이기에 낯선 곳에 보건소에 근무하기에 선배는 만날 때마다 동생 잘 부탁한다라고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건전함의 만남인데도 진료받는 일곱 개 마을에 그만 연애한다는 소문이 나고야 말았다.
우린 한동안 만나지 않기로 했지만 대신 보건소가 아닌 읍내로 자리를 옮겨 토요일에는 주변 관광지를 돌며 대화의 시간을 이어갔다.
우린 만나면 기쁘고 낯가림이 없는 소장님의 밝은 모습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아 갔다.
홀로 자취하면서 진료소를 지켜주는 소장이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소장은 발령받아 온지도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이즈음, 축복 소식이 들려왔다. 축복 소식에 기뻤지만 소장과의 정들었던 시간들을 떨쳐 내기란 쉽지 않았다.
어찌해야 하나? 많은 생각들이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함께 축복의 대열에 참여하자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전혀 관심도 주지 않았다.
교회에서 선배 누나들은 우리의 소문을 들었는지 시골집까지 찾아와 설득을 한다.
한편으로는 축복을 받는다는 확고한 신념은 있었지만 정든 소장을 어찌해야 하는지 괴로운 시간들만 흘러갔다.
모든 것 뒤로하고 대상분의 사진을 받아 들고 부모님께 보여 드리니 부모님은 엄청 기뻐하셨다.
그해 겨울 영농후계자를 모두 정리하고 소장과의 관계도 모두 정리하고 무거운 발걸음은 서울로 향해야 했다.
버스에 올라 창가로 보이는 보건소를 바라보니 소장님도 담벼락에 고개만 내민 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정들었던 부모형제와 마을주민들, 모두 나와 배웅의 얼굴에는 눈물범벅의 모습을 보면서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던 충동을 간신히 참으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모습들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훔쳐야 했다.
농촌에서 행복하게 살겠다던 꿈을 내팽개 치고 더욱이 소장과의 이별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소장님도 일 년 더 근무하고 창녕으로 근무지를 옮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각자 객지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3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때쯤 모토로라 핸드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할 무렵 소장님의 목소리가 핸드폰 수화기로 들려올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오늘 군포로 오빠 만나로 오겠다는 떨리는 목소리에 온몸이 그만 굳어 버렸다.
만나자마자 어쩔 줄 몰라하는 소장을 붙들고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우린 긴장을 풀기 위해 카페에 앉아 기쁨의 만남인지 속상함의 만남인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었다.
소장의 방문이 너무나 의외였기에 무슨 일 있냐고 묻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시어머니의 구박과 남편과의 원만하지 못한 생활들을 모두 토해내는 모습에서 지난 시골에서의 다정했던 우리 둘만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갈 때 지금 함께 눈물 흘리는 소장의 슬픈 모습 앞에 어떤 말을 해주어야 위로가 될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장님, 용기 내서 다시 살아 보자라는 말만 되풀이해주었다.
밤늦게 갈 곳도 없으면서 무작정 간다며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떠나는 모습이 안타까움과 어쩌면 자책감마저 들게 했다.
며칠 전, 33년 만에 소장의 거쳐를 알게 되고 또 작년 정년퇴임을 한 사실을 인터넷에서 이름과 퇴임식 사진을 보게 되어 긴가민가 했다.
이름과 창녕이란 것은 같은데 아무리 보아도 청년시절의 소장님의 얼굴이 아니었다.
며칠을 두고 보아도 아닌 것이라  단념하려 했지만 혹시 모를까 창녕 보건소에 전화를 해보니 작년에 퇴직하셨고 자신은 후임소장이라 소개했다. 연락처를 보내고 꼭 전 소장님께 전해주길 부탁드렸다.
다음날  소장께 전화가 오길 간절히 기다렸지만 사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어쩌면 소장의 지혜로운 판단일지도 모른다.
부디 생활 터전과 환경은 달라도 각자의 삶대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주어야 했다.
한편, 그리움을 가슴 한편에 간직하지 않고는 못 살 것 같아  인내하며 살아 보기로 다짐한다.

                               202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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