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기쁨
황동규 시집


아픔의 맛
지난해 늦장마에 쓰러졌다가 일으켜 세워져
죽은 채 가을 겨울 보내고 봄이 오자 몸살처럼 되살아나
허리 언저리로 쉬지 않고 새잎 내보내던 소나무
이번 큰 물에 또 쓰러졌다 잔뿌리 모두 베에 올려놓고 누웠군!
하며 보니 그 나무였다
이번엔 누가 일으켜 새우려 들지도 않는구나
엉덩방아 찧으려는 못해보고 쿵! 뿌리째 내동댕이쳐졌을 때
봄부터 조심히 새로 엮어오던 일순 공백이 되었을 때
나무의 느낌이 어땠을까? 몰려드는 잠 밀치며 하나하나 새로 연결 하던 뿌리의 실핏줄 햇빛 속에 첫 이파리 뾰족이 내밀던 순간의 떨림 기어오르는 넝쿨 식물들이 새잎 덮어버리거나
위에서 죽은 잎들 쏟아져 내려와 숨통 막히면
다시 조심조심 옆 피부를 찟고 새 이파리 내밀던 마음 조임....
그만 가시라고 실뿌리들이 가볍게 바람에 몸을 흔들었다
뿌리 뽑혀도 남는 생각이여 나무에게도 추억이 있다고 생각 못했던 생각이여
나무의 새 삶이 그냥 지워졌다고 생각진 말자 상처의 생살 돋을 때
상체에 아린 살들 촘촘히 짚어가며 하나씩 꿰매다
확 터지곤 하던
그 아픔의 환한 맛,
이 지구에 생명이, 묻어 있는 한 지워지겠는가?
p139
2026년1월 25일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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