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회 점심
오신탁
운동회 때는 뭐니뭐니 해도 점심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운동장 뒷쪽 소백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뜀박질에, 응원에,
땀 범벅을 씻어내고 어머니가 싸오신 계란과 삶은 밤,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은 하늘을 나는 기분입니다.
동네 사람들과 자리를 펴고 함께 나눠먹는 먹거리들이 얼마나 기분좋게 했는지 모름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나를 부르더니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감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그때는 감인지도 몰랐습니다. 우리 마을과 주위 마을에도 감나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몰랑몰랑하고 계란보다 큰 것이 오똑하니 조그만 두 손에 가득 잡혔습니다.
꼭지부터 한입에 베어 물었습니다.
아! 이렇게 달수가! 난생 처음 맛보는 단맛이었습니다.
하나도 거부감이 없는 순전히 단맛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릴때 엄마의 젖이 부족했습니다.
제 위로 여섯명의 형제들이 엄마의 영양분을 모두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염소를 길렀나 봅니다. 한낮에는 풀을 뜯어먹는 염소를 붙잡아 양푼에 젖을 짜 받았습니다.
소죽을 끊이고 난 숯불에 염소젖을 끊여 엄마젖 대신 마시고 자랐습니다.
염소젖을 덜 끊이면 배탈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젖 대신 아들에게 먹이고자 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가 있겠습니까?
엄마 젖이 최고의 영양식인데 염소젖을 먹어서 인지 체력은 늘 부족했습니다
반에서 키 순서대로 앞에 섭니다. 늘 맨 앞줄어 서기는 국민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였습니다.
여동생과 함께 고학년이 되었을때는 노란빛이 도는 분유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라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주신 홍시는 당원처럼 톡 쏘는 맛도없고 사카린처럼 쓰게 달지도 않고 자연에서 나온 자연 그대로의 달콤함이었습니다.
운동회 날이면 주변 일곱 마을의 어른들이 모두 나와 축제나 다름없는 날이었습니다
학생들 운동회가 끝나면 마을 대항 배구경기를 합니다.
늠름한 청년들이 하는 배구대회는 박진감이 넘쳐 흐름니다.
꼬맹이의 눈으로 바라본 청년 형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름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다부진 몸매가 될 수 있을까? 란 생각이 앞섭니다.
워낙 조그만 몸이기에 언제나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배구 대회는 언제나 우리 마을이 1등을 했습니다
소아마비인 형인데도 공을 띄워주면 강스파이크로 내리 꼿는 자세가 일품이기에 상대팀은 어느 누구도 받아 내질 못합니다.
이 형은 싸움도 잘해 주위 7개 마을에 대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다른 마을에서 싸움 도전을 해와도 기꺼이 맞아주어 당당히 왕좌의 자리를 지켜냅니다.
우리집 바로 아랫집에 살기에 형의 살가운 면모도 수시로 볼때가 많아 친하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운동회날은 학교의 축제인 동시에 마을 전체의 축제였습니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운동장에서 개선문을 통과해 기세도 늠름했던 초등 꼬맹이의 꿈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깃발이 춤을 춘다 ~~ 우리 모두 다같이 ~~ 응원가처럼, 힘차게 달렸던 것처럼 그날을 회상하며 지금도 힘차게 살아 내자고, 다짐하는 날이 되자고, 나에게 언제나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202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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