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윤자료방/행복 심정 글

광야/이어진

청산 /임흥윤 2026. 2. 3. 07:34



광야 (曠野)
        이어진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서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절망 위에 세운 민족의 의지
이육사의 '광야'는 민족의 운명과 시인의 신념을  그려 낸 작품입니다. 텅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식민지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이 빼앗긴 민족의 황량한 현실이자 동시에 새 역사를 준비하는 정신의 공간으로 해석합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는 태초의 처음시간을 소환합니다. 현재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넘어, 민족의 기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제일 절실한 부분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영웅이라는 한 인물이라도 좋고, 민족을 구원할 새로운 시대적 각성의 상징으로 봐도 좋겠습니다. 구원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며 스스로를 단련한 이들에게서 비롯된다는 말입니다.

  이육사는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한 志士입니다. 본명은 이원록, ‘이육사’는 실제 이름이 아니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의 수인 번호 ‘264’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해옵니다.

이육사의 시들은 대체로 강인하고 직설적이며, 절망적인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반드시 도래할 ‘새날’을 노래합니다. 청포도에 등장하는 손님도 광야의 초인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지금은 비록 춥고 괴롭지만 매화꽃 피어나고 초인이 오리니..희망의 씨를 뿌리자는 어쩌면 절규입니다.

아무런 대안없이 표류하는 심정과, 광야 같은 현실 속에서도, 끝내 미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기입니다.
초인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황량함 속에서 더욱 단단한 믿음과 의지를 길러낸 이육사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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