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신앙칼럼>
법정(法庭)의 가기 전에 화해하라
예수는 산상수훈에서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 급히 사화하라”(마태복음 5:25)라고, 가르쳤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다. 법정에 가기 전에 화해하라는 이 말씀 속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늦었다는 뜻이다. 법정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곳일 수는 있어도 관계를 회복하는 곳은 아니다. 법정은 승패를 가를 뿐이며, 그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과 공동체의 신뢰는 쉽게 무너진다.
종교의 문제, 신앙의 문제를 세상의 법정으로 가져가는 순간 이미 공동체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판결에서 누가 승리하든 진정한 의미의 승자는 없다. 겉으로는 승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공동체 전체로 보면 모두가 패자가 된다. 법은 세속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그러나 종교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기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법 이전에 도덕이 있고, 도덕 이전에 양심이 있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의지해야 할 기준은 바로 양심이다.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선생도 평생 “양심을 스승으로 삼아 살라”고 가르쳤다. 양심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권력도, 조직도, 제도도 양심 위에 설 수는 없다.
최근 미국에서 문현진 UCI 회장과 참어머니 한학자 총재 측 사이의 법정 다툼에서 한학자 총재 측이 패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실 여부나 법률적 세부 내용을 떠나,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매우 무겁다. 하늘의 섭리를 말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는 공동체가 모자간에 세상의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혹시 어떤 쪽에서는 법정에서 이겼다고 축승회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승리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앙의 공동체가 세상의 눈앞에서 서로를 고소하고 다투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 자체로 이미 큰 상처와 부끄러움을 남긴 것이다. 법정의 판결은 끝났을지 몰라도, 신앙 공동체의 마음속에는 씻기 어려운 흔적이 남는다.
지금 많은 통일교 식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디에 가서 자신이 통일교인이라고 말하기조차 조심스러운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단지 한 사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갈등과 오해, 그리고 지도자들의 선택이 오늘의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더 근본적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법과 권력의 자리로 갈 것이 아니라 양심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서로를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통일교의 역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이상 가정을 세우겠다는 비전에서 출발했다. 가정은 사랑과 화해의 공동체이다. 만약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출발점과 너무 멀리 떨어진 모습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의 선언이 아니라 겸손한 자복이다. 서로를 향한 정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이다. 법정의 판결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수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길 위에서 화해하라.”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 공동체라면, 세상의 법보다 먼저 양심의 법을 따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 앞에서 다시 떳떳하게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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