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방

이재영 신앙논단

청산 /임흥윤 2026. 3. 16. 08:27

<이재영 신앙논단>
누가 참부모를 갈라치기 하는가?

최근 통일교회는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해산 명령과 같은 외부적 압박도 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교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이다. 교회의 신앙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서로 다른 주장과 해석이 충돌하면서 공동체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특히 독생녀론을 둘러싼 신학적 해석의 차이가 교회 내부의 큰 논쟁으로 떠오르고 있다.

통일교 교리의 핵심 명제는 분명하다. “독생자와 독생녀가 만나 참부모가 되셨고, 참부모를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이 열렸다.” 이것이 통일교 신앙의 중심 구조이다. 독생자와 독생녀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참부모의 탄생을 위한 섭리적 위치와 과정의 개념이다. 이 둘이 하나 되어 사위기대를 이루고 하늘의 축복을 통해 참부모가 된다는 것이 원리의 기본 틀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에서 참어머니의 위상을 강조한다는 명분 아래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참아버지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고 참어머니는 무원죄로 태어났다.” “참어머니는 태어나기 전부터 독생녀로 점지되었지만, 참아버지는 선택된 독생자다.” “참아버님의 말씀은 광야시대의 옛말씀이고 참어머님의 말씀은 새시대의 새말씀이다”라는 식의 주장이다. 이러한 해석은 교리적 논쟁을 넘어 신앙 공동체의 심각한 혼란을 낳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비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참부모를 갈라치기 하는 사람들” 혹은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누가 참부모를 갈라치기 하는지 분명해진다. 참어머니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참아버님을 원죄 있는 존재로 설명하거나, 그 말씀을 광야시대의 옛말씀으로 깎아내리는 것이야말로 참부모를 분리하는 행위가 아닌가. 참부모는 하나이며,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은 서로를 통해 완성된 존재이다. 어느 한쪽을 높이기 위해 다른 한쪽을 낮추는 논리는 참부모 신앙의 근본 구조와 맞지 않는다.

통일교 신앙에서 참어머님이 독생녀라는 사실을 부정한다면 통일교 신앙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동시에 참아버님이 독생자의 위상을 지니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통일교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다. 독생자와 독생녀는 서로 경쟁하거나 우열을 가리는 개념이 아니라, 참부모가 되기 위한 섭리적 과정 속의 위치이다. 결국 독생자와 독생녀라는 개념은 참부모라는 더 큰 개념 안에 포함되는 하위 개념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양의 언어철학이 말하는 중요한 원칙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바로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이다. 하나의 사물에는 하나의 정확한 말이 있어야 하며, 말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공자가 말한 정명사상(正名思想)도 같은 맥락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바로 설 수 없고, 말이 바로 서지 않으면 행동 또한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올바른 개념과 정확한 언어가 사회와 공동체의 질서를 세운다는 뜻이다.

오늘 통일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 역시 결국 개념의 문제다. ‘독생녀’, ‘실체성령’, ‘참부모’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공통된 이해가 부족하므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만약 개념이 자의적으로 확대되거나 신앙적 열정에 의해 과장된다면, 그것은 교리의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신앙은 맹신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서야 한다. 그리고 진리는 정확한 개념과 올바른 이해 위에서 세워진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감정적 논쟁이 아니라, 교리의 본래 의미를 차분히 되돌아보고 정확한 개념을 정립하는 일이다.

참부모는 하나다.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을 분리하는 어떤 주장도 결국 참부모 신앙을 훼손할 뿐이다. 독생자와 독생녀의 의미 또한 참부모라는 더 큰 범주 안에서 이해될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된다. 지금 통일교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은 서로를 향한 낙인과 비난이 아니라, 진리의 이름을 바로 세우는 정명(正名)의 작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