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약속
구재익
솔로몬왕은 아버지 다윗왕과의 신성한 약속 지켰노라고 이스라엘 성전봉헌식에서 야훼하나님께 고백하였다.
단순히 선왕과의 약속만이 아닌 다윗왕께서 극진히 섬기던 야훼 하나님과의 약속이기도 하였기에 신성한 약속이라 말하였다.
신앙생활에서 때론 자신에게 허튼약속을 하는경우가 많다. 자기와의 약속은 소홀히 하기쉽다.
약속을 허투로 한다면 아직 신실한 사람이 못되었다는 증거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친구와 세 번이상 약속을지키지 못하면 우정은 금이가고 결별의 수순으로 가게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러하다면 신과의 약속을 가벼히 할 수없을 것이다.
하늘은 백번 속임을 당할지라도 또 믿어주시겠지만 신뢰에는 금이 갈 수밖에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실 때도 외모를 보지않고 (롬2/11 ) 중심(마음)을 보신다 하심도 동일한 의미다.
하나님앞에 인간이란 배신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도무지 믿어줄 수없는 인간들 속에서 믿어 줄만한 사람이 있다면 너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내아들이다. 라고 주저없이 선포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3자회동을 하면서 생명을 드려서라도 뜻을 이루겠다고 약속을 했다.
야훼께서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던 예수님에게 내사랑하는 아들(마3/13)이라고 즉각적으로 표현하였음은 지극히 당연한 사건이다.
경전의 가르침대로 신자들은 덩달아 앵무새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지만 실인즉 습관적으로 암송하는 차원인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예수님의 심중까지 헤아린 분이 참부모님 뿐이시다.
예수님이야말로 자신과의 약속에 승리한 오직 한사람이 바로 예수님 한분 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주셨다.
문총재님은 자기와의 약속을 굳건하게 지켜낸 최초의 인물을 당신의 유일한 모델로 여겼다.
스승께서 보여주신 대로 참된 인간의 가치를 발현하는 것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믿음인 것이다.
개밥으로 끼니를 떼우던 선배들은 아무리 궁해도 선생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자신와의 약속은 더 좋은 것이 보인다면 수정하고 다시 할 수는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자신과의 약속을 수시로 철회하거나 변경하는 사람은 신성함이 머물 자리가 없다.
신성함은 투명한 백옥색이요, 우주를 닮은 영인체는 오로라같은 영롱한 빛깔을 뿜어낸다.
인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불리할 경우라도 자신과의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이다.
도산선생이 새싹회에 장학금을 직접전달 하기위해 국내로 잠입해들어 오시다 일경에 체포되었고 결국옥중에서 순국하셨다.
약속이 이렇게 중한 것이다. 어린이와의 약속은 대신자를 보낼 수도 있었다.
도산선생은 자신이 한 약속이기에 자신이 직접 식민지 국가의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되돌아갈 수없는 길을 선택하신 것이다.
아무리 유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종교적 신념을 따르겠다고 서언하고 나선 길이라면 배반의 달콤한 유혹쯤은 비웃으며 쫓아내야 마땅하다.
배신이란 쓰디쓴 잔을 택할 바에야 차라리 자리를 내던짐이 백번 낫다
천주앞에서 서약하고 서원한 맹서마저 헌누더기처럼 버린다면 뒷감당을 어이하리요
자신과의 약속이든, 사람과의 약속이든, 절대자와의 약속이든 약속은 모두 신성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 경찰의 고문도 참아내셨고 무시무시한 김일성 정권의 핍박도 견뎌내셨으며 덴버리의 수모도 극복하신 후에 끝내 왕초사탄을 자연굴복 시켰다.
후일 영계에 가면 참부모님을 어찌 우리가 대면할 수 있으리요?
신성성을 지킨 자만이 그래도 부르심에 합당했노라고 어께를 두들겨 주시지 않으시겠는가?
병오 오월 십칠일 평해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