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구재익
천국의 열쇠는 돈이라면 살 수있을까? 아니면 권력으로 구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안되면 완력으로 취할 수 있을까? 중세시대는 돈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권리를 취득할 수 있었다.
완력으로 세속적 권한을 좌지우지했던 율법주의 성직자들도 천국문 열쇠는 어찌할 수없었다.
그렇다고 금전으로 매수할 수는 더욱 더 안될 일이다.
오직 참 사랑으로만 열릴 수있는 천국문이다.
천국문은 상징적인 문일까? 형상적인 문일까? 상징적이며, 실체적인 문일까?
상징적 문이라면 기도나 염원만으로도 열릴까? 아니면 특별한 은총으로만 열릴 수있는 문일까?
한번 취득하면 영구히 사용이 가능할까? 아니라면 잠시 잠깐만 보유하는 것일까?
기독교는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상상으로만 바라보는 천국이기에 그 열쇠가 어떻게 하면 열리는지 도무지 알 수없는 노릇이다.
부처님은 출가를 하였기 때문에 애시당초 생과사로부터 출발하는 고뇌의 골짜기를 벗어나려 하셨으니 문 밖인지 안인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12세에 가출한 처지여서 예수님의 행적이 묘연할 뿐더러 미스테리한 삶의 궤적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님의 가출은 출가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출생의 비밀과 입틀막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에 대한 의문은 예수님 당사자의 입장에서 풀 수가 없다.
예수님과 유사한 길을 걸으신 문선명선생의 십대이후의 행적을 유추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성싶다.
문선명 선생은 타락한 역사에서 잃어버렸던 천국의 열쇠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며 일본유학을 떠나셨고 공산당 정권인 북으로 들어가서 세계적인 지도자(여성)를 찾기위한 탕감복귀의 길을 걸으셨던 것이다.
천국문의 열쇠를 쥐고있는 한 분의 이상상대는 어디에 계신가?
아담은 이브를 통하여, 이브는 아담으로 말미앎아
천국문 열쇠를 찾아내야 하는 숙명적인 복귀의 길을 걸으셨다.
하늘의 명령따라 북으로 가심도 한 분 섭리의 동반자요, 다시 찾아 복귀해야할 해와였던 것이다. 그렇게 만난 필생의 동지요, 동반자요, 이상상대가 한학자 총재님이시다.
이쯤해서 꼭 유념해야 할것은 죽어서 가는 막연한 천국이 아님을 밝혀두고자 한다.
천국문 열쇠를 가진존재는 하나님도 아니고 세상권세를 움켜쥔 사탄은 더욱 아니다.
바로 사탄의 타락성을 부숴버리고 하나님나라를 건설할 복귀 된 아담과 이브의 만남과 성혼이 천국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축복가정은 감상적인 천국에 더 이상 몰입해야할 이유가 없음을 주지하기 바란다.
우리 각자가 받은 축복이 천국문 열쇠를 맞추는 번호키요, 키워드인 것이다.
세속에서 함께 생활 하시는 식구여러분!
우리에게 천국문 열쇠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 아닐 수없다.
아직도 스토리가 있는 천국, 테마가 전개되는 천국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개성과 기호안에서 만족한 공간과 같은 천국은 무의미 한 것임을 꼭 아셔야 한다.
우리가 찾는 스토리는 축복을 이루려 걸어왔던 과정이고, 테마는 축복받은 일부일처가 행복을 완성해가는 축복가정생활 그 자체인 것이다.
理想속의 천국을 그리다보니 중구난방식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의 모습처럼 그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곳에는 핵심이 없다.
지상에서나 영계에 가서나 중심은 축복을 완성한 각자의 참가정밖엔 천국의 열쇠를 공유할자나 함께할 곳도 없다.
지상에서 내사랑 천국문열쇠를 극진히 보살피고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엉뚱한 곳에서는 열쇠를 찾을 수도 없거니와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각자의 축복가정은 보배로운 천국문 열쇠지기의 수임을 잘 수행 하시고 영원한 나라에 임하시면 천국의 열쇠는 천보가정에 잘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병오 오월 십구일 평해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