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와 농담나누기
구재익
어디 감히 조선시대 최고봉의 대학자와 농담 따먹기를 할 수있겠는가?
하지만 같은 시기에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으면 못할것도 없었을것이다,
학문이 도저하다 하여 사람차별하는 비인간적인 양반이 아니라 휴머니스트였기 때문에 가능했을것이다.
그는 고매한 유학자요 뛰어난 대학자였지만 인품또한 남달랐다.
맏아들이 결혼하여 손자를 보았는데 산모가 젖이 부족하여 애를 먹고 있었다,
때마침 안동 본가에 퇴계선생댁에서 종살이 하던 노비가족도 아들을 낳았다.
그소식을 접한 큰 자부가 아들에게 수유해주기를 어른께 편지를 보내 간청하였다.
퇴계선생도 난감 했으리라.
손주를 살리기위해 종의 자식을 희생시키느냐? 아니면 손주를 살리려 비정한 주인장 이 될것이냐 고민이 깊었으리라.
하지만 결국 종의 자식도 귀한 생명이라 죽게할 수없다며 자부의 청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때만약 종의 자식은 몰라라하고 손주를 살리려아들집으로 종의 아내를 보냈다면 오늘날까지 그분에대한 존경심이 지속 되었을까?
아마도 그랬다면 그다지 존경받는인물로 기억되지 않았을것이다.
참 부모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으로 50줄에 앉아서야 선문대 신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는 과정을 마쳤다.
졸업식날 아버님께서 아산 선문대 졸업식장을 찾아주셨다.
졸업식장은 참부모님께서 입장하심으로 분위기가 방탄 소년단을 맞는 그이상의 분위기였다.
말씀을 주시시려고 등단하신 아버님께서 앞자리에 앉아있던 제게 몇살이냐? 하문하셨다. 그때 겁도없이 25세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52살을 거꾸로하면 25세가 되기에 큰소리로 대답했지만 식장내 분위기는 찬물을 뿌린듯 했다. 아버님께서는 나이가 더들어 보이는데 하신다.
그때 자신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드려야했다. 맞습니다 52세 입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항상 젊게 살라하셔서 25살처럼 살려고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했더니 파안대소 하시면서 정말 기분좋아 하셨던 사건을 잊을 수가없다.
父子관계라면 유쾌한 농담정도는 오히려 엔돌핀을 돌게하는 자극제가 아니겠는가?
어쨋든 평생에 잊지못할 메시아와의 농담사건이 되었다.
이후로도 한남동이나 천정궁에서 훈독회때 주로 앞자리에 앉은 덕분에 자주 눈길 주심을 기억하고있다.
부모님의 사랑은 언제나 따뜻했지만 그럴수록 제자의 입장에서는 父子有親보다는 君臣有義에 가깝게 행동해야한다.
통일교회의 한가지 약점이라고 한다면 아버지 것도 내것, 내것은 당연히 내것, 이라는 태도의 소유관념에서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다.
아버지것은 공적이요 내것도 당연히 공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늘날 이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감히 부모의 명을 거스리고 자리를 탐하려드는가?
부모라 할지라도 공인의 위치에 계시면 명령권자이시며 주신 명령에 절대복종해야하는 자식의 입장임을 명확히 해야한다.
종교인은 특히 통일교회 식구들은 반복된 원리교육을 통하여 영계에대한 가르침을 배웠고 터득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역사적 비극은 결국 자리다툼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있을 터이다.
권력의 이양과정에서 자식이 선왕을 축출하거나 살해한 경우가 30%에 이른다고 한다.
어찌보면 왕의 최대정적은 신하보다 오히려 자식이었다는 사실이 무섭다.
이같은 역사적 사건과 무관해야할 종교에서조차 말씀에 불복종하고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촌극이 아닌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뼘 사람 마음속은 알 수없다는 속담처럼 정말 모를일이 사람 마음인가보다.
자신이 자신에대해 정말 규율이 되지 않는가?
수십미터 높이에서 유리바닦 아래를 볼때 오금이저려 잘 걷지도 못한다.
추락하는 자신의 양심과 그에따른 수치심은 정녕 느낄 수없단 말인가?
을사 십이월 십육일 평해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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