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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우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청산 /임흥윤 2025. 12. 19. 09:26



하늘은 우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원리가 분명하고 신앙의 목적과 목표가 이토록 또렷한 공동체가 왜 스스로 파탄의 길로 들어섰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저는 남을 탓하기보다 먼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길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알면서도 따르지 않았고, 원리를 말하면서도 삶으로 증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서 속 이스라엘의 광야 표류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늘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보이지 않는 약속보다 손에 잡히는 형상을 택했고, 그 결과 금송아지는 신앙의 대체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리를 외치면서도 사람을 의지했고, 신앙을 말하면서도 권력과 성과를 축복으로 착각했습니다.

우상은 돌과 금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비판이 허락되지 않는 권위, 질문이 죄가 되는 구조, 특정 인물을 절대화하는 분위기 또한 우상입니다. 하늘의 뜻을 묻기보다 조직의 안위를 먼저 계산하고, 진리의 기준보다 결과의 숫자에 안주하는 순간, 신앙은 생명을 살리는 힘을 잃습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집단적 침묵과 자기 합리화뿐입니다.

하늘은 우상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는 신앙의 세계에서 예외 없는 질서입니다. 하늘이 중심에서 밀려나는 순간, 그 자리는 반드시 다른 것이 차지합니다. 권력과 두려움, 계산과 타협이 신앙의 언어를 빌려 들어옵니다. 오늘의 위기는 외부의 공격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자라난 우상들이 빚어낸 결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은 고발이 아니라 호소입니다. 먼저 믿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더 져야 할 한 사람의 자기반성입니다. 침묵으로 동조했고, 안일함으로 방관했으며, 불편한 질문 앞에서 눈을 돌렸던 저 자신의 신앙을 하늘 앞에 내려놓고 싶습니다.

광야의 역사는 분명히 말합니다. 우상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없습니다. 회개는 눈물의 양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사람을 내려놓고 하늘을 다시 중심에 모실 때, 신앙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습니다. 하늘은 우상을 용납하지 않으시지만, 진실한 자기반성과 책임 있는 회개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으로,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지인이 보내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