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는자가 먼저 돌을들라
구재익
오늘날은 법치만능 시대가 되어진 듯하다.
끊임없이 소송사건이 발생하고 고발인이든 피고인이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의 잣대를 해석한다.
상황판단을 비롯하여 법이란 범주안에서 이성적으로판단 하게되는것은 사고의 영역이다.
바람, 소망을 담아 긍정적 방향으로 원만하게 정리되거나 그리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신념의 영역일 것이다.
두가지 개념이 서로 다른듯 하면서도 지향점은 동일한 방향이 될 수있다.
법의 잣대를 적용함에도 일반적인 법지식을 따르거나 판례에 의존하려는 경향은 법조문에 충실하려는 이성적 수준의 작용일 것이다.
반면에 피의자라 해도 인격을 존중하며 도의적 기준과 그용례를 범용하는 사람은 인간적인 양심에더 무개를 두는 법조인일 것이다.
인지상정을 따르려는 법관은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인간미를 소유한 사람이리라.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양심의 법정을 운영하는 사정기관이 되기를 바라며 민주적 절차를 지향하는 법조인이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그대표적인 법정신을 가졌던 인물이 솔로몬왕의 재판이었다.
영민한 판결을 이끌어낸 지혜와 재판의 결과가 가져올 최선의 방책을 찾아서 판단한 솔로몬왕은 뛰어난 현자였다.
덕이 모자란 정치집단이나 사회구조의 편협한 이해타산이 작용하면 여론재판이 우세해진다
우리시대는 인민재판식 대중의 선동에 의한 재판에 익숙해졌다.
신문을 비롯하여 지상파,공중파, 유트브등 모든 미디어가 재판에 관여하는 형국이 되었다.
방송매체에서 먼저 범죄를 규정짓고 법과는 아무상관없는 선출된 관료나 의원들이 떠들면 재판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정권의 시녀되기를 자처한 경찰이나 검찰은 권력자가 가르키는 방향대로 판단한다.
자존감이 강한 사법당국도 눈치를 아니볼 수없는 지경으로 끌려간다.
신앙인의 애절한 기도가 법관의 법정신에 무슨 영향을 줄 수있을까?
텔레파시라는게 있는게 분명해 보인다.
페르시아 아하수로왕의 통치시절 실권자 하만이 모든 유대인을 미워해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
왕비였던 에스더가 이사실을 알고 3일간 간절하게 금식기도를 하고 어전회의에 나가 왕께 발고했다.
하만의 음모는 수포로 돌아갔고 오히려 왕의 미움을 받아 죽게되었다.
이와같은 극적인 반전드라마가 만들어 지는 까닭은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는 에스더와 그의 사촌 모르드게 그리고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의 합심기도가 왕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진정한 법정신이란 편가르기나 이해를 따지지않고 선의를 따라야 한다.
죄없는자부터 먼저 돌을 던지라.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도와 양심의 법정에서는 누구도 억울하지않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주라 한다.
재판장은 신의 사제와 같은 입장에서야 옳바른 재판을 기대할 수있게 되었다.
신의 사제라하여 무조건 관대하라는 뜻은 아니다. 선의에 기초하여 사람을 살리는 방망이가 되게 하라는 의미다.
김건희 담당재판부 우인성 판사는 이름대로 인성이 좋아 양심에 따른 법정을 운영하는 것같아 선의를 기대해본다.
병오. 일월 이십구일 평해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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