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구재익 시인방

은혜와 사랑의 이중주

청산 /임흥윤 2026. 2. 18. 07:31

은혜와 사랑의 이중주
                 구재익

은혜란 무엇인가? 느낌인가, 감동인가, 아니면 신께서 베푸시는 보상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깨닮음인가?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달음을 먹고 사는 존재다. 그렇다.
깨달은 만큼 지혜로워지고 지혜의 문이 열리면 점점 진리에 가까워진다. 진리안에서 명철함으로 살면서 생활속에서 은혜안에 거하게 된다.
은혜로운 사람은 천도를 거스릴 수없으며  진리안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라고 사도요한이 증언(요8/31~32)하였다.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직은 신앙인은 아니요, 호기심이 발동하는 단계이거나 말씀을 학습하는 처지여서 신앙의 맛을 느끼지 못하니 진리를 알기에는 부족하고 욕망으로부터 온전한 자유함을 얻을 수없는 존재다.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지 못하면  또한 하나님의 정지의도, 심정이나 사랑도 느낄  수없는 모습이 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신앙이 관념적인 상태에 머무르거나, 자의적 해석에 머물러  실증을 느껴 스스로 이탈 하거나 지속적 관계를 유지해도 무익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의심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스스로 미혹에 빠져 식구들에게 불신을 조장하고 작당을 하거나 스스로 소외되어 결국은 비신앙의 길로간다.
이탈을 결정하는과정에서는 덕스럽지 못한 결과로 이어저 공동체에 해를 끼치게된다.

은혜와 사랑은 정비례해서 나타나는 정서적 감응이다. 때문에 은혜를 받게되면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이 유발하게 되어있다.
은혜로운 생활을 한다면서 사랑이 없다면  은혜를 받은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은혜를 받은것처럼 감정을 위장하는 것이며 자기자신마저 속이는 것이된다.
사랑하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고 미운마음이  솟아나는 것은 아직도 진리로 화육되지 못하여 평화로움과 자유함을  경험하지 못한 탓이다.

공동체내에서 타자와의 관계가 경직되고 존중감이 떨어져 계급적 상하관계로 인식되거나 종교적 회의론자로 변질 되어 갈 수밖에 없다.
내안에 미움이 싹트고 관용이 사라지며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지 않는 까닭은 무엇때문일까?
교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곳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거나 사랑받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수수작용 원리는 배웠어도 스스로 먼저 사랑을 주려하기 보다는 사랑받기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이 비교적 은혜를 빨리 받는 까닭은 그만큼 사랑의 감정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성적인 이해력이 부족한 탓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의적 판단에 종속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한국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은혜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오랫동안 사람이 하느님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틀린말도 아니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다.사람에게 실망하면  신앙심도 바닥을 드러내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쉬뜨거웠다 쉬식기도하는 단점이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노릇까지 잘 해야하는 이유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은혜로운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자가충전으로 가능하다.
새술은 새부대에 부으라는 말처럼 새술에 취하여 살려는 은혜를 갈망하며 신명나게 살면 사람들이 모여들며 공감능력이 향상되어 늘상 하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은혜와 사랑은 행복한 신앙생활로 이끌어주는 이중주와 같은 것이다. 나아가 다중이 함께 나누는 은혜와 사랑은 잘 어우러진 오케스트라와 같은 것이다.
모처럼 우울한 생각을 떨쳐내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오니 더욱 소중한 은혜와 사랑을 느끼는 부자가 된 기분이다.

병오.   이윌 십구일     평해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