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
김덕현
"덕"은 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얻은 "수양의 산물"이며 "노력의 결과" 입니다.
덕에는 음덕(陰德)과 양덕(陽德)이 있는데, 음덕은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선행을 말하고, 같은 선행이라도 남에게 알려진 덕을 양덕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스스로 빛과 향기를 드러내는 존재와 제 스스로는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존재들이 빛과 향기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물과 꽃이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물은 항상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세상의 온갖 때를 다 씻어줍니다.
바위와 험한 계곡을 마다하지 않고 모든 생명을 위해 묵묵히 그리고 쉬지 않고 흐르며 생명을 낳고 키웁니다.
그런 물과 같은 사람, 물과 같은 인생이야 말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존재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다들 제 빛깔과 향기를 드러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 세상에서 물과 같은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한 순간에 시들어버릴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물과 같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면서도 그 물의 역할은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 물의 덕을 보려고 살핍니다.
세상에서 꽃과 같은 사람만 있고 물과 같은 사람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지 그 결과를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무엇을 베풀면서 반대급부를 바라지않고 음덕(陰德)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을 찾는다면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음덕을 쌓는 사람에게는 대우주(하늘) 에서 베푸는 양보와 은혜가 주어집니다.
옛 선인(先人)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교훈 가운데 "작은 일이라도 선한 것이 아니면 행하기를 두려워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행하라"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작은 선(善)도 쌓이면 큰덕(大德) 이 되고,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 국가발전에도 도움이 됩니다.
반면에 작은 악(惡)이 쌓이면 대악이 되며, 쇠에서 생긴 녹이 제 몸을 깎아 먹듯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그래서 노자는
물을 상선약수 (上善若水) 라고 하여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라고 설파하였습니다.
물은 그릇에 담길 때 자신의 모양을 고집하지 않고 그릇의 모양대로 담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를 버림으로써 지고지순(至高至純)의 본래 모습을 유지합니다.
- 법정스님
●만사유시
(萬事有時)
-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요. -
술은 반취(半醉),
꽃은 반개(半開),
복은 반복(半福)이라고 합니다.
술을 마시되 만취(滿醉)하면 꼴 사납고,
꽃도 만개(滿開)상태 보다
반쯤 피었을 때 가 더 아름답습니다.
사람 사는 이치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충분한 만족이란 있기도 어렵거니와
혹 그렇다면 인생이 위태로워 집니다.
'구합(九合)은 모자라고,
십합(十合)은 넘친다'는
옛 속담도 있듯이
반 정도의 복(福)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자란 듯 적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인 듯 합니다.
소욕지족(小慾知足) 이라 했고.
-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며 -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열흘 붉은 꽃은 없습니다. -
성한 것이 얼마 못가서 쇠해 집니다.
그러니 꽃이 진다고 그리 서글퍼 할 일이 아니지요.
꽃이 빨리 진다고 더 애닲아 할건 또 뭐람.
꽃이 져야 열매가 맺지요.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지 않는다 한들
그 또한 무슨 대수랴.
꽃이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듯이
만사유시(萬事有時)
세상은 다 때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언젠가 오고
그 모든 게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아낍니다. "왜"
인사할 때 허리를 조금 더 숙이면,
보다 정중해집니다.
그러나 그걸 아낍니다.
말 한마디라도
조금 더 친절하게 하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을텐데,
그걸 아낍니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
"감사합니다"하면 참 좋을텐데,
그걸 아낍니다.
실례를 했으면
"죄송합니다"하면 참 좋을텐데,
그걸 아낍니다.
오해를 했으면
"겸손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하면 좋을텐데,
그것도 아낍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면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면
좋을텐데, 그걸 아낍니다.
칭찬의 말도 아끼고
격려의 말도 아끼고,
사랑의 말은 더 아낍니다.
주어서 손해볼 것도
아까울 것도 없는데..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아낍니다.
이렇게 손해볼 것도, 아까울 것도 없는데
이제는 아낄 것 없이
맘껏 표현하는 삶을 살아 가면 좋겠습니다.
"진실"은 나의 '입술'로
"관심"은 나의 '눈'으로
"봉사"는 나의 '손'으로
"정직"은 나의 '얼굴'로
"친절"은 나의 '목소리'로
"사랑"은 나의 '가슴'으로
아끼지 말고 살아 있을 때
마음껏 사용 하십시요.
아낀다고 해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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