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사의 침묵
임흥윤
그 봄날,
나는 비워지고 있었다
덕숭산은 수덕사를 품고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산 앞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1970년대 어느 봄,
군복을 입은 채 수덕사의 흙을 밟았다.
대민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시간은
불도저 삽질로 채워졌으나
그 속은 점점 비어가고 있었다.
산사는 고요했다.
고요는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웅장한 울림을 주는
침묵의 소리였다
새벽 범 종소리는 새벽을 깨우고
그 소리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 했다
절 뒤편 비탈에서
흙을 밀고 돌을 옮기는
불도저는 요란했지만
그 소리는 오래 남지 않았다.
남는 것은
잠시 멈춘 호흡과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벽초 노스님.
그분은 늘 말보다 먼저
눈빛으로 다가왔다.
해 질 녘,
산이 노을을 받아 잠시 숨을 고르던 때였다.
“자네… 내 상좌 할 생각 없나.”
나는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은
떠나지 않았다.
밤이 되면
별이 내려앉았다.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으로,
마음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가끔
그 아래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쥐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다.
김일엽 스님과도
오래 앉아 있었다.
말이 길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이 길었다.
“마음을 보려면
말을 줄여야 하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들었다.
어둠이 가장 엷어지는 시간,
도량을 도는 발걸음이 있었다.
묵언을 지키던 스님들의
등이 먼저 지나갔다.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말할 것이 없는 듯한
고요한 등.
일자로 이어지던 목탁 소리.
끊어지지 않는 물결처럼
어둠을 건너갔다.
그 위에 얹히던 불경 소리.
그리고,
한 여승의 목소리.
이 세상 것 같지 않았다.
가늘었으나 멀리 갔고,
맑았으나 붙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무언가를 놓쳤다.
아니,
놓아졌다.
“저것도 다 공이네.”
언젠가 들은 말이
그때야 스쳤다.
있으나
잡히지 않는 것.
들리나
붙잡을 수 없는 것.
나는 잠시
아무것도 붙들지 않았다.
떠나는 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이미 그곳은
내 안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벽초 노스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붙잡지도,
보내지도 않으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가벼워지는 법을 알았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결국
그 길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그 산사로 돌아간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도착한다.
그곳에는
여전히 바람이 먼저 와 있고
별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제는 안다.
비어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붙잡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잡지 않으면
남는다.
버리지 않아도
가벼워진다.
밤하늘을 바라본다.
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있으나
잡히지 않는 것.
그것이
그때 스님이 말하던
공이었을 것이다.
문득
그날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자.”
어디로 가는지
이제는 묻지 않는다.
이미
건너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내
노년의 침묵은
허공에 떠도는 매아리로
허전하고 쓸쓸한 풍경 이되였네
(군시절
수덕사에서
대민지원 도쟈작업하던 추억
회상하며)
2026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