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습작1

산사의 침묵

청산 /임흥윤 2026. 4. 4. 11:53





산사의 침묵
        임흥윤

그 봄날,
나는 비워지고 있었다
덕숭산은 수덕사를 품고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산 앞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1970년대 어느 봄,
군복을 입은 채 수덕사의 흙을 밟았다.
대민지원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시간은
불도저 삽질로 채워졌으나
그 속은 점점 비어가고 있었다.
산사는 고요했다.
고요는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웅장한 울림을 주는
침묵의 소리였다


새벽 범 종소리는 새벽을 깨우고
그 소리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 했다
절 뒤편 비탈에서
흙을 밀고 돌을 옮기는
불도저는 요란했지만
그 소리는 오래 남지 않았다.
남는 것은
잠시 멈춘 호흡과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벽초 노스님.
그분은 늘 말보다 먼저
눈빛으로 다가왔다.
해 질 녘,
산이 노을을 받아 잠시 숨을 고르던 때였다.
“자네… 내 상좌 할 생각 없나.”
나는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은
떠나지 않았다.
밤이 되면
별이 내려앉았다.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으로,
마음으로 내려앉았다.
나는 가끔
그 아래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쥐고 있던 것들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다.
김일엽 스님과도
오래 앉아 있었다.
말이 길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이 길었다.
“마음을 보려면
말을 줄여야 하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들었다.
어둠이 가장 엷어지는 시간,
도량을 도는 발걸음이 있었다.
묵언을 지키던 스님들의
등이 먼저 지나갔다.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말할 것이 없는 듯한
고요한 등.
일자로 이어지던 목탁 소리.
끊어지지 않는 물결처럼
어둠을 건너갔다.
그 위에 얹히던 불경 소리.
그리고,
한 여승의 목소리.
이 세상 것 같지 않았다.
가늘었으나 멀리 갔고,
맑았으나 붙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무언가를 놓쳤다.
아니,
놓아졌다.
“저것도 다 공이네.”
언젠가 들은 말이
그때야 스쳤다.
있으나
잡히지 않는 것.
들리나
붙잡을 수 없는 것.
나는 잠시
아무것도 붙들지 않았다.
떠나는 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이미 그곳은
내 안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벽초 노스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붙잡지도,
보내지도 않으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가벼워지는 법을 알았다.
세월이 흘렀다.
나는 결국
그 길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그 산사로 돌아간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도착한다.
그곳에는
여전히 바람이 먼저 와 있고
별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이제는 안다.
비어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붙잡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
잡지 않으면
남는다.
버리지 않아도
가벼워진다.
밤하늘을 바라본다.
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있으나
잡히지 않는 것.
그것이
그때 스님이 말하던
공이었을 것이다.
문득
그날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자.”
어디로 가는지
이제는 묻지 않는다.
이미
건너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노년의 침묵은
허공에 떠도는 매아리로
허전하고 쓸쓸한 풍경 이되였네


(군시절
수덕사에서
대민지원  도쟈작업하던 추억
회상하며)
2026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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