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

생명 평화 정의를 바라지않고 죽음 전쟁 불의를 좋아하는 현실/조응태

청산 /임흥윤 2026. 4. 19. 10:45

  



생명 평화 정의를 바라지 않고 죽음 전쟁 불의를 좋아하는 현실
               조응태

  이란(Iran)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을 하겠다고 이틀 전에 세계 앞에 선언을 했는데, 하루만에 약속이 번복(飜覆)되고 뒤집어졌다. 세계 나라들과 인류가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고, 희망을 감지한 증시(證市)는 반등(反騰)했고, 기름값도 떨어질 것을 예상하면서 시민들과 소공상인들이 아주 좋아했다. 그런 기대가 이란의 강경파(强硬派)와 혁명수비대들이 다시금 전쟁을 선포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이란 내부에서 심각한 정권 다툼이 있다는 증거이다. 여기서 선한 편이 이겨야 할텐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다시 호르무즈 해협에는 전운(戰雲)이 감돌게 되었고, 애꿎은 청년 군인들이 본질을 벗어난 애국 및  호국의 이름 아래에 전사(戰死)를 하게 생겼다. 위정자는 할 수만 있으면 평화를 지향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와 반대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그 순간 위정자(爲政者)는 가짜인 위정자(僞政者)로 추락하게 되고, 결국 국가 권력을 휘두르면서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좀비(Zombie, 악마의 실체)가 되고 만다. 고상(高尙)한 인격의 향기를 풍기는 본성적인 인간이 되어야 할 텐데, 이와 동떨어진 흉악하고 비참한 악성적(惡性的)존재가 되고 만다.  
  아름답고 향기롭고 생명력이 솟구치는 이런 좋은 날에, 어찌하여 인간만이 이렇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말았는가? 전쟁을 해야 먹고 사는 생계수단 때문인가? 절제가 안 되는 권력욕 때문인가?
정치와 종교를 비롯하여 각 분야에서 단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생명 평화 정의를 바라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기회가 되는대로, 생명 평화 정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무엇이 평화이고 정의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은 역사의 흔적 및 현재의 실상(實狀)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인류가 피를 흘리면서 쟁취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호하고, 이런 국가들과 동맹 강화를 하며, 복지국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다. 이와 달리 공산주의 체제를 따르면, 빈곤, 죽임, 비인권, 전쟁, 죽음, 공포 속에서 살게 된다.
공산주의가 선포되던 1848년만 때 및 러시아공산혁명이 일어나던 1917년만해도 공산주의 실체가 좋은지 나쁜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에 인류가 잘 몰랐고, 그래서 그런 무지를 악용하여서 나쁜 마음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강화하였다. 그로부터 이제 100년이 지나는 사이에 공산국가의 잔인성이 만방에 드러났고, 인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인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모순과 허구가 드러났다.
  이제는 이런 실정을 모두가 두 눈으로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어떤 분야든지, 어떤 공동체든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日光 趙應泰 01034076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