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소리/구재익 시인방

참아버님과 소석의 친교

청산 /임흥윤 2025. 12. 19. 06:05


참아버님과  소석의 친교
                     구재익

참부모님의 심중을 꿰뚫고 심정이 통하고  대화를 주고 받을 만한 제자는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또 세계 곳곳에 알고지내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고 섭리적인 일 때문에 접촉면을 넓혀 나가셨어도 천주적인 경륜하심을 놓고 깊은 대화를 나눌 만한 인사는 별반 많지 않았다.
천하를 경영할만한 인재를 얻는 것을 필생의 목표로삼고 많은 사람과 교류하시고 인맥을 넓혀오셨지만  호형호제할만한 인물은 흔치않았다.
46년 5월 하순경 홀연히 월북을  결행하셨을때의 심경은 북한에 가시어 세계적인 인물을 찾겠다는 각오로 입북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위험을 무릎쓰고라도 세계적 인물을찾으시려는 집념 하나로 모두가 월남해 내려오는 북한으로 들어가신것이다.

하늘섭리의 기장중요한 핵심은 아벨입장이셨던 선생님은  가인편 인물을 만나 심정적으로 하나 되셔야 했다.
복귀섭리가 너무나 얽히고 설키어 만나고 풀어야할 일도 많아 누구를 어떻게 만나 무엇을 풀어야할지 우리같은 사람은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었으리라.
참부모님께서 만난 인물중 섭리적으로 필적할 만한 인물은 역시 김일성 주석이었다.
원수지간이었던 그를 만나기전 일주일 동안 하와이 바다 차디찬 해수안에서  인내의 한계를 넘나들며 특별정성을 드리시며 원수라는 감정을 완전히 씻어내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북한에 가셔서 김주석의 요청으로 의형제를 맺으심으로 경천동지할 사건이 되었다.
사탄편 가인을 완벽하게 사랑으로 굴복시키는 실체적 가인 아벨 복귀섭리의 완성을 성취하셨던 것이다.
아버님의 전생애를 통털어 김일성과의 극적인 만남이 없었다면 어쩌면 목적이 없는 풍성한 잔칫상같은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그만큼 가장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없다.
앞으로 아버님의 생애 뮤지컬이 만들어 진다면 가장 스팩타클하고 다이나믹한 장면이 바로 김일성과의 해후 장면이 될것이다.

김일성을 만나기. 45년전 세계적인 인물?(가인편)을 만나려 월북하시게 했던 하나님의 의중은 육천년 만에 하늘을 배반하고 떠났던 천사장격 김일성을 만나 화해하는 장면을 보고싶지 않았을까?
하늘부모님께서는 그러한 취지로 김일성을 찾아가 의형제를 맺게 하셨던 것이다.
이장면은 마치 예수의 최후의 만찬같은 아니 그보다 백배나 더 큰 의미가 담겨진  명장면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실제적 사건을 뮤지컬로 다른 어떤 작품도 비교자체가 무의미한 명 장면이 될것이 분명하다
원수끼리 만나 호기롭게 서로가 서로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통크게 끌어안는 사건이야말로 대장부다운 위대한 만남이 아닐 수없다.
아무리 오랜시간이 흘러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전인류의 뇌리속에 박히게 될것이다. 아니 박히도록 만들어야한다.

또하나의 소중한 만남은 아버님과 소석. 이철승 전 신민당총재와의 만남이다.
어떤이는 소석을 백제의 무왕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그의 인간됨이 왕상으로 보여질만한 인품이라는 사람도있댜.
어떻게 두 분이 만나셨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버님께서 이총재에게 동생이라고 불렀고 그도 아버님께 형님이라고 불렀다.
사실 우리가 모르는무슨 특별한 이유가있지않고서야 그렇게  기깝게 형,동생하는 사이로 친해질 수있겠나싶다.
두 분사이도 어쩌면 역사적 화해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으로 본다.
추론컨데 이씨는 조선시대 왕족이었다. 왕족의 유력한 한 인물을 동생으로 의형제를 맺었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에 깊이 패인 자욱을 메꿔 새시대로의 전환을 가져오려면 구시대와 새시대, 동과서, 북과 남의 화해가 절실하였다.
남쪽에서 만난 사람중에서 유일하게 동생으로 삼고싶 은 인물로 낙점이 되었다는 사실로 상징성이 매우큰 인물이라고 본다.
그이상의 의미부여는 망상일 수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정말 심쿵하고 마음이 통하는 아우 하나쯤 두고 싶은 것이 사람 본성이 아닐까?
잘 나가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자랑 하나 해보겠습니다.
아버님 흉내를 내보려고 제가 살았던 동네마다 형님,누나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다 모아보면 버스한대 정도는 될 것같아요.
그저 인생이란게 별 모양 같겠습니까? 뽀족해야할 이유가 없겠죠? 오며가며 형님 동생 많이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그게 바로 홈그룹이고 가정교회도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동주가 되든 이백이 되든  아니면 광수가 되든 그건 각자의 능력에 맡기고  그냥 담백한 형님동생으로 통하는 세상 만들면 어찌아니 좋을까요?

을사     십이월 십구일     평해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