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리마더한과 세계의 아들들
구재익
홀리마더한 한학재총재님의 호칭에 대한 한총재님의 생각은 여성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세계 각국에서 결혼한 여성에 사용되는 호칭은 남편의姓을 따라서 써야한다. 미국이나 유럽, 가까운 일본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국에서 한총재님을 호칭할때 학자韓文이라고한다.
한국에서는 본래 태어난 가문의 성을 따르며 영구히 동일한 호칭이 부여된다.
다시말해 홀리마더한이라는 대명사는 한국식 표기방식의 용례를 그대로 적용한것에 불과하다. 다만 앞 부분에 거룩한 혹은 존귀하다는 형용사를 덧붙인 점은 존경심의 표시일 뿐이다.
한국사회는 이미 여성에대한 인식이 오래전부터 서양보다는 진보했다.
오늘날에 들어와 여성상위시대니 뭐니하지만 제도상으로부터 여성에대한 확실한 인귄보장은 우리나라가훨씬 앞선 입장이다,
홀리마더한의 표현방식은 미국식 방법에 한국적가치관을 접목했다는 점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제 유엔에 가입한 모든 회원국에서 이같은 사례를 모델로서 범용해야 할것이다.
이런 고유명사 하나부터 바뀌어 나아감으로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 부터가 작은것 같지만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며 한 총재님의 세계적 활동에 더욱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할 것이다.
한학자 총재님의 괄목 할만한 업적 중 하나인 선학평화상을 제정하고 각계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공로가 인정된 분들에게 주기적으로 시상을 실행하고있다.
국제사회가 날로 국가 이기주의와 폭력적인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없다.
회차를 거듭할 수록 여타 세계종교와 차별성이 보이는 건강한 평화세계 구현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여긴다.
한총재님께서는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인정되지 못하고 소외된 아프리카 대륙을 어떻하든 돕고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었다.
특히 치유되지 않고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혐오감이나 차별화가 극복 되지못한 상황에서 한총재님의 결단이 돋보였다.
편치않으신 몸으로 우선 서아프리카 끝단에 위치한 세네갈로 향하셨다.
한맺힌 고뤠섬을 찾으시어 노예로 끌려간 원혼을 위로하고 해원해 주심으로 서구 기독교가 저지른 악덕을 청산하려 애썼다.
이후 세네갈 마키살 대통령을 만나 독생녀임을 교육하시고 아들로 삼으셨다.
이처럼 당당하신 모습으로 이슬람 신도가 95%인 세네갈 국민을 상대로 TV 생중계를 통하여 참가정 서약및 축복식을 거행하셨다.
아프리카 7개국 이상을 순방하시며 예언가,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으시고 하늘로부터 임재하시는 신령스런 힘과 빛을 계시하심으로 참어머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신 분임을 깨닫게 하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무엘 하데베 선지자는 의인이요, 깨달음이 깊은 수백만 신도를 거느린 영적지도자다. 그는 홀리마더한을 뵙고 영안이 열리어 성령이 임재하심을 목격한후 참어머님 되심을 고백하였다.
어머님께서는 또다른 차원의 성령역사를 통하여 독생녀 참어머니이심을 기독교권만이 아닌 이스람권에도 커다란 저항없이 받아드리는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는 역사상 한번도 경험 해보지 못한 이교도의 결혼축복 운동을 맞이하게 되는 희대의 사건이요 축제의 장이 되었다.
이스람국가는 타종교의 종교행사 자체를 터부시 하거나 적대감을 보이던 종래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오히려 독생녀에 대한 신비로움과 감동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한다.
홀리마더한 참어머님은 국가지도자든 종교지도자든 가리지 않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소명을 소개하고 알리시는데 주력하셨다.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막중함이란 독생녀 참 어머님께서 하늘의 경륜하심을 천하만방에 알리고 선포하는 것만큼 시급한 일은 없다.
이제. 우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지도자들은 시대적 사명감을 깊게 공유하고 실체성령 독생녀 참어머님의 대신자, 대사자로서 혼신을 다해 세상에 알리는 모습이 되어야함을 자각해야 하겠다.
율법에는 살인하지마라, 간음해마라, 거짓증거하지마라, 네이웃을 해하려 하거나 아네를 탐하지말라등을 제외하면 누구가 되었든 도와주고 협력하라는 가르침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선행을 둔갑시켜 악행으로.치부하는 치졸한 행위는 종교의 발목을 잡고 일체 관여하지 말라는 회괴한 논리다. 정치꾼들이야말로 날밤지세며 교회문을 두드리거나 읍소하지나 말라.
종교가 궂이 정치권에 고분고분 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을사 십이월 이십일 평해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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