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영길 네번째 시집
모퉁이
도라지꽃
그녀는 손톱을 감추고 살았다 도라지 껍질을 벗겨낼 때마다 이마의 주름은 덩달아 깊어졌고
드러난 희뿌연 속살은 숨길 것 없는 가난이었다
매니큐어 대신 칙칙한 도라지의 진액이
손톱 밑에 부끄러움으로 엉겨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손가락을 웅그리고 있어야 했으니
벗겨내고 싶은 것이 어찌 가 난 뿐이었을까
품삯에 딸려오는 도라지를 무쳐 알싸움
하게 씹을 때마다
급은 손마디에 벤 관절통은 무시로 욱신거렸지만
도라지 뿌리처럼 실한 아들과 도라지꽃 대처럼 늘씬한 딸의 결혼식장에서 모처럼 환하게 남색 치마저고리 차려 입고 손 끝마디 웅크린 채 도라지꽃처럼 벙긋방긋
웃었다
세상 시름을 벗겨내다가 인생 주름 깊어져
남색 짙은 하늘빛인 줄도 바다 신
빛인 줄도 모르고
하늘하늘 웃음꽃 피운
순박함이었다
p82
우화羽化를 꿈꾸며
매끄러운 면에 생긴 균열
틈이 생기고
느슨해진 내부가 술렁거렸다
풍문이 뾰족한 끝이 수시로 박히고
탄탄했던 믿음에 스미는 불신 적극적인 적대감이 편을
가른다
고 착된 습관은 방심의 혀를 찔러
맹목이 깨어지고
벌어진 틈새의 귓속말이 난립한다
비밀이랄 것도 없는 비밀이 등껍질을 벗을 때까지
정체는 점차 애매해진다
우화羽化 가 되기까지는 반기는 악수를 미루기로 했다
p103
2025년12월 29일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