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엉이 겨울
정광일 시집
네가 있음에
예측할 수 없는 밤이 두려워도 네가 있으니 좋다 기침 소리에 새벽잠을 뺏겨도 내 있어 아침이 좋다
응급실 향하는 발걸음 분주해도
내가 있으니 새벽길조차 즐겁다
갈기갈기 찟겨나간 영혼이라도
네가 있음에 나는 웃을 수 있고
네가 있음에 나는 내일을 꿈꿀 수 있다
딸로 와줘서 고맙고
고통에서 꺼내주지 못하고 지켜만 보는
무능한 나를 아빠라 불러줘서 고맙다
가쁜 숨결로 힘들어 하면서도 내 곁을 머물러 웃을 수 있음에 고맙다
사랑하는 딸아 이렇게라도 끝까지 살자
p26
심청이도 아닌데
엄마가 있는데도
엄마 젖 한번 물리지 못한 아이, 민지
엄마는 자식 앞에서 젖을 삭혀야만 했다
쓸모없이 부풀어가는 젖가슴을
주사와 약을 복용하며 잔인하게 주저앉혔다
먹을 수 없는 젖을 제거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심청은 어미 없이 동양젖을 먹고 자랐다는데
어미가 있는데도 동냥젓을 먹여야 하는 아이
다들 엄마 품에서 젖을 먹고 잠드는데
산후조리원에서 어미 없이 홀로 자라는 저 아이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오 잔인한 하늘이여!
p64
2026년1월 4일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