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를 걸으라.
구재익
예수님의기적적인 사건중의 하나인 갈릴리 호수 물 위로 걸어서(마14/23~32) 고기를 잡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보이심이다.
갈릴리 호숫가 오병이어(마14/13~21)의 기적이 있었던 직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아마 편집자의 의도가 있음직한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구약시대의 활동무대는 주로 이집트나 중동지역의 제국들이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사막을 왕래하며 민족부흥운동이나, 국권회복운동을 수행했다. 사막에는 숨을곳도 많고 비밀회합을 하기에도 마땅한 공간이다.
주변 이스라엘 공동체를 잇는 포교활동은 바닷길 아니어도 사막길이나 육로로 왕래가 가능했다.
예수님 이후 신약시대의 기독교도의 활동무대는 지중해를 중심한 바닷길로의 선교여정이었기 때문에 물과 바다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막이든 해양이든 두려운것은 불문가지의 명확한 사실이다.
사막에서는 죽어도 흔적이라도 남지만 바다에서는 아무도 알 수가없고 오직 하늘만이 알 수있기에 두려움은 몇배가 된다.
물위까지 걸으셨다는 의미는 여러가지로 살펴볼 수있다.
제자들이 세상구원을 위한 활동을 확장시키려면 바다쯤이야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하려면 물위를 걸으셨다는 신화 하나쯤은 남겨놓아야 하지 않았을까? 매우 외람된 상상을 해봄직 하다.
물위에 앉은 음녀(계17/1~18)라고 표현된 내용으로 본다면 물은 꼭 바닷물이나 수면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파나 혼탁한 인간사회의 타락한 현상을 의미한다. 사람이 일부러 물위를 걸어다니는 기행을 펼쳐 보일이유가 없다. 오히려 마술을 부리는 사람정도로나 인식시킬 뿐이다.
베드로에게 물위를 걷게하신 목적은 세상의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타락한 세상을 밟고 두려움없이 나아가는 당당한 지도자가 되라는 가르침을 주신 내용이 분명하다.
세파가 두려워 세상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없다면 초대교회는 한 세기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비록 예수님을 통한 간접경험 이지만 신비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바다에 대한 공포심조차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위를 걷는다는 순간적인 경이로움이 근본적인 두려움을 해소할 수는 결코없다.
바다를 알고 바다를 이길 수있는 실력을 갖출때 진정한 바다 사나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참부모님으로부터 바다를 통한 신앙교육을 받았고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는 강렬한 인상을 모두가 경험했다.
참부모님과 함께 바다를 누비거나 경험했던 분들이라면 태평양이라도 식구들이 놀이마당을 연상하도록 훈육 받았다.
계절 낙시투어와 먼 바다로나가 참치를 낚았던 경험을 공유했던 식구들은 무용담 이상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것이다.
참부모님께 바다란?
태초에 수면위를 거니시던 하나님(창 1/2)을 만나시는 해후의 공간이요, 하늘의 비밀을 속삭이시는 장소이며, 섭리를 엮어가시는 훈련도장이요, 기도와 정성의 공간이며, 궁극적으로 두려움을 털어내고 바다를 다스리는 방도를 터득하시는 것이었다.
거대한 폭풍우와 싸우시던 아버님께서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안방같이 평안함을 얻으셨다는 말씀도 주셨다.
속된표현으로 어느정도 강심장이시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릴 수있으셨을까?
바다에 패배하면 섭리는 없다. 는 결의에찬 도전정신을 기르기위해 바다에서 살아나는 방법을 제자들에게 상속해주셨던 것이다.
바다를 앞마당처럼 관리하시고 바람과 물결조차도 주관하시는 원력의 근원이 되신 참부모님께서 완전한 주관권을 세우셨다.
과학의 시대 신비주의는 힘을잃고 비논리적 주의주장도 빛을 잃어 오직 사랑과 원리로 승리적 주관권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바다를 다스리는자 세상을 관리하는 자격증을 획득하게 될것이다'. 용기는 수능고사나 자격증 취득하듯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식구들이 불퇴전의 용기를 가질 수있고 물러설 줄 모르는 기백을 배양해야 한다,
지도자 필수 코스로 바다수련을 적극 권장해본다.
대양보다 더넓은 세상은 없다. 절해 고도에 홀로 남아있다는 고독한 심정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있고 곧 더 넓은 세상을 소유하는 장부가 되리라.
병오 이월 이십칠일 평해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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