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마음의 방향대로
구재익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은 기도하게 되어있다. 형식이야 어떻든 간절히 기도하면 의외의 성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기도하는 마음가짐을 들으시는 이가 반하게 할 수있어야 한다.
절대로 갖지말아야 할 자세는 입으로만 외치는 풍각쟁이의 모습은 안된다.
시장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호객하듯 내말좀 들어보소 하소연을 털어논다하여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기도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고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것, 기원자가 내가려는 방향이 옳은 일인가?
좋은 것인가? 먼저 깊게 통찰해야한다.
기도는 신앙의 척도를 헤아리는 것이 아닌 삶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 결단을 위한 기도는 단 세번이면 족하다. 그이상 반복해서 기도드린다면 고백일랑 그만하고 실천부터 하거라 하며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서 실천해줄것을 촉구할 것이다.
기도는 개인의 영달 위한것이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 처음먹는 마음가운데 네게 명령하시는 이가있다.
소크라데스는 데이몬이라했고 칸트는 정언명령이라고 했다.
마음의 소리 마음의 명령 즉 정언명령을 듣는 습관을 가지라. 그리하면 전광석화같은 깨우침을 받으리라.
기도자는 새날을 맞이 할 때마다 감격스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먼저 감사하셔라.
우주안에 충만하게 흐르는 氣와 情을 흡수하는 정신을 가다듬고 묵언으로 하늘의 심정과 하나되면 생소의 작용의 감지하게 되어있다.
하늘이 애통해 하시니 기도에 앞서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라. 식구들의 삶에 애통해보라. 손을 잡아주고 싶은 형제자매가 보일것이다.
그렇다면 지체말고 손을 잡아주기 바란다. 그것이 기도하는이의 태도이며 기도를 성취하는 방법이다.
숨을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기본적인축복을 누리고있다.
세상을 향해 활보할 수있는 건각을 소유했다면 넉넉한 촉복을 받은 입장이다.
다시한 번 말 하지만 기도는 믿음을 측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내가 가야할 방향을 확정하는 것이다. 믿음을 돈독히 했느냐 아니냐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눈으로 측량하는 것이다. 신의 기준은 누구도 알 수없다.
알려고도 하지말라. 신과의 눈높이가 맞지 않다면 아직 믿음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삼팔선에서 아버님의 눈물의 기도는 하늘도 울고 땅도 울리셨다.
김일성정권 5년간의 고난을 승리하시고 가까스로 삼팔선에서 남과 북의 경계선을 밟고 서시어 다음과같이 기도를 올렸다.
"비록 통일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으로 향하지만 반드시 남북통일을 이루기위해 북을 다시 찾을 것이며 당대에 뜻을 다 이루지 못하면 자식들 내세우고 제자들을 동원해서라고 통일을 완성하겠사옵나이다."
기도로 서원한 내용을 곧바로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신앙자세를 보여주신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통일을 위하여 새롭게 도전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장어려운 시기지만 통일을 위한 거룩한 의지를 세우고 전진해야 한다.
통일은 우리의 고유명사로 입덕했고 운명을건 필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남북을 하나되게하는 목표는 비켜갈 수없는우리의 영원한 미션이다.
잊지말고, 외면하지말고, 거룩한 성업을 이룰때까지 변치말고 전진합시다.
병오. 삼월 삼일 평해서신